[Weekend Interview] J리그 사간도스 윤정환 감독 “롤모델은 니폼니시 축구…내 꿈은 국가대표 감독”

입력 2012-02-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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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절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이름을 날린 일본 J리그 사간도스 윤정환 감독이 일본 오키나와에서 미소 띤 얼굴로 취재진을 맞이하고 있다. 윤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플레이메이커로 뛰며 한국 4강 신화에 일조했다. 오키나와(일본) | 남장현 기자

현역 최고의 테크니션
무명팀 J2 사간도스 의외의 도전
선수시절 맹활약 감독 부임 인연
일본 J리그 사간도스 윤정환(39) 감독은 현역시절 한국 축구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렸다.

이제는 선수가 아닌, 사령탑으로 지휘봉을 잡고 있지만 플레이메이커의 정석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그렇게 성공적인 현역을 마친 윤 감독은 지금은 지도자로서 또 다른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다. 작년 J2리그에서 팀 역사상 최고 성적인 2위를 기록하며 승격시켰다. 사간도스의 전지훈련에는 여러 명의 일본 기자들이 동행하고 있다.

수원 삼성 전지훈련지 오키나와의 니시하라 훈련장에서 만난 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들어봤다.

○선수 윤정환 & 감독 윤정환


-현역 시절의 윤정환과 지금의 윤정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글쎄, 선수 때는 내 관리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모두를 챙겨야 하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스타로 기억된다.

“처음 사간도스에 선수로 갔을 때, 왜 한국 대표 출신이 이런 초라한 데 왔느냐는 시선이 많았다. 호기심? 이젠 실력으로 증명하고 싶다. 지역 주민들이 7만 정도인데, 승격이라는 오랜 꿈이 이뤄졌다며 행복해 하더라. 나도 눈물나게 기뻤다.”

-지도자로서 점수를 매긴다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감독이라는 호칭도 어색하고. 한 40점쯤?”

-나머지 60점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경험이다. 훈련 방식이나 선수들을 다루는 태도 등이 부족하다. 기존의 선배 감독님들과도 많이 차이가 있고.”

-일본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주문하는 건 어떤 부분인가.

“기본 원칙이다. 공격이나 수비나 기본을 강조한다. 그리고 항상 생각하고 뛰고 볼을 차라고 말해준다. 집중력 역시 강조하고 있다.”

윤정환은 일본 제자들로부터 ‘FM(정석) 맨’으로 통한다. 부족하다 싶으면 될 때까지 같은 동작을 반복하도록 한다. 불평을 터뜨리는 일부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해서 지금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일본 축구 & 일본 생활

-왜 하필 사간도스였나? 선택에 후회한 적 없나?

“진로를 모색할 때, 사간도스가 경험 많은 선수를 원했다. 은퇴를 앞두고 일본에서 선수로 좀 더 뛰어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물론 풍족한 팀에서 뛰고 싶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사간도스에서 기록 갱신이 계속된다.

“선수로 왔을 때, 최초로 J2리그 4위를 했다. 그 때부터 지역 팬들이 희망을 갖더라. 언젠가는 1부로 오르리란 예감? 2년 뛰고 은퇴를 했는데 지도자를 하느냐, 다른 팀에서 선수를 더 하느냐 기로에 놓였다. 구단이 먼저 붙잡았다. 나중에 감독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에 도전을 결심했다.”

-지도자 승진도 굉장히 빠른 편이다.

“처음에는 어드바이저 역할이었다. 기술 담당 트레이너로 봐야 할까. 그 때 유소년 클럽을 많이 접하며 지도자의 기본을 배웠다. 이후 코치와 수석코치를 밟았고 작년 감독으로 승격됐다. 2010년에도 감독을 할 뻔 했는데, AFC 지도자 라이선스가 없어 안 됐다.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을 더 채웠으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일본 축구를 보면 기본기와 기술을 떠올리게 된다.

“체격을 봐야 한다. 일본 선수들은 작은 체구에 마른 체형이다. 거친 체력 훈련보다는 볼을 갖고 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하지만 요즘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풍토가 바뀌는 추세다. 일본도 체형이 좋아지며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국도 기술이 늘고 있지 않은가. 균형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언어는 전혀 문제없나?

“이곳 선수들이 한국어를 배우려하지 않으니까 내가 일본어를 공부할 수밖에. 가끔 화가 나면 모국어가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다. 욕은 안 한다. 혼자 중얼거린다.”

사실 양 국 축구는 서로를 깔보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테스트도 있다. 보는 이들이 많을 때 패스를 해 그걸 해결 못 하면 놀리고 왕따를 만드는 것이다. 윤정환은 어땠을까. 의외로 기가 셌다는 후문. 아예 처음부터 날카로운 볼 터치로 상대의 기를 죽였다. 세게 몸싸움을 거는 상대가 있으면 더 터프하게 했다. 무시당할 턱이 없었다.


○지도자 윤정환의 꿈


-지도자의 궁극적인 목표가 뭔가?

“이제 갓 시작했을 뿐이다. 길이 막 열린 정도? 여기서 좋은 결과를 내고, 꾸준히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면 한국에서 좋은 오퍼가 오지 않겠나? 선수 때나 지금이나 한 가지 꿈을 향해 뛰고 있다. 선수 시절 태극마크가 목표인 것처럼 지도자가 됐으니 언젠가 올림픽이나 국가대표를 지휘하는 것도 명예로운 일이다.”

-사간도스의 현실적인 목표는 뭔가?

“구단에서는 7위를 희망한다.(왜 그런가?) 7위부터 상금이 나온다.(웃음) 물론 무작정 높은 목표는 세울 수 없다. 10위권 진입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으로 본다.”

-구단 지원은 어떤가.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작년 우리가 2위를 하리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동기부여는 분명 있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뚜렷한 목표가 있다. 생존이다.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돈이 성적을 좌우하지 않는다.”

윤정환에게 강한 영감을 준 스승이 있다. K리그에서 명성을 떨친 니폼니시 감독(러시아 톰 톰스크)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같은 프로그램을 기초로 가르치는 걸 보면서 “축구 역사가 100년이 넘었어도 변함없는 철학과 가치가 있다”고 강한 애정을 드러낸다. 종종 연락을 하고 조언도 구하지만 일정상 만나지는 못했다. 듬직한 제자는 언젠가 꼭 스승을 찾고 싶다.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닮고 싶은 롤 모델이 있는가.

“K리그 부천SK(현 제주)를 이끌었던 니폼니시 감독을 존경한다. 선수들을 존중하고, 현실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분이다. 선수 때는 그의 철학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야 느낀다. 어떻게 해야 축구를 즐긴다는 걸. 선생님이 가르친 것들을 지금 쓰고 있다.”

-평소 좌우명이 있다면?

“‘최고 아닌 최선을 다하자’가 철칙이다. 최고가 되긴 쉽지만 최선은 어렵다. 선수들에게도 그런 말을 자주 해준다. 최선을 어떻게 얼마나 하느냐에 결과가 따라온다고.”

-일본에 한국 영건들이 많이 진출한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진 A급 대표 선수들이 대거 진출했다. 13명쯤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대학 선수들이 많아졌다. 예전 위상과 큰 차이가 있다. 이젠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작년에도 40여 명이 일본에 왔다 절반 이상이 버티지 못했다. 어떤 목적으로, 뭘 배울지 방향이 뚜렷하지 않다는 차이가 있다. 돈?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여러 모로 볼 때 크게 나을 건 없다. 유럽에 진출한다는 보장도 없다. 일본은 훈련도 적고, 생활도 편하다. 나태하기 십상이다. 실패 확률이 높다. 먼저 후배들이 뚜렷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윤정환은?

○생년월일 : 1973년 2월16일
○신체조건 : 173cm 68kg
○학력 : 금호고-동아대
○프로경력 : 95년 유공 입단, 부천(96∼99년), 세레소 오사카(00∼02), 성남(03), 전북(04∼05), 사간도스(06∼07)
○대표 경력 : 96애틀랜타올림픽, 2002한일월드컵
○지도자 경력 : 테크니컬 어드바이저(08), 코치(09), 수석코치(2010), 감독(2011∼현재·이상 사간도스)

오키나와(일본)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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