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AG 향해 뛰는 KSPO 선수들] 런던의 그날처럼…아시아 金 찌른다

입력 2014-06-04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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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아시아를 찌른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펜싱 국가대표 삼총사 구본길, 김정환, 오은석(왼쪽부터). 그들은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4년 전 억울하게 뺏긴 금메달을 되찾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사진제공|국민체육진흥공단

“이번엔 아시아를 찌른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펜싱 국가대표 삼총사 구본길, 김정환, 오은석(왼쪽부터). 그들은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4년 전 억울하게 뺏긴 금메달을 되찾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사진제공|국민체육진흥공단

4. ‘펜싱 3총사’ 구본길·김정환·오은석

창의적인 ‘발펜싱’ 업그레이드…남자 사브르 단체전 출전
4년전 광저우대회서 중국 홈 텃세 1점차 준우승 복수 별러
공단 든든한 지원 속 2월 펜싱월드컵 제패 등 컨디션 최고

펜싱은 유럽문화를 대표하는 유럽인의 자존심이다. 고대의 검투가 로마시대와 르네상스를 거쳐 신사들의 스포츠로 거듭난 것이 바로 펜싱이다. 유럽에는 국내 태권도장처럼 펜싱도장이 흔하다. 2012년 8월 런던올림픽. 펜싱 변방 한국이 유럽 강국들을 차례로 꺾고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최대 이변이었다. 금메달을 합작한 4명의 한국대표팀에서 원우영(32·서울메트로)을 제외한 김정환(31) 오은석(31) 구본길(25)은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이하 공단) 소속 선수들이다. 갈채를 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공단의 검객 삼총사를 만났다.


● 세계 허 찌른 메이드 인 코리아 ‘발펜싱’

유럽 펜싱은 ‘폼생폼사’다. 이길 때도 질 때도 멋을 생각한다. 고대 이집트의 사원에는 검투 장면이 새겨진 부조가 있다. 현대 펜싱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이 조각 속 검객들은 덮개, 가발, 안면보호대로 치장하고 있다. 3000년 전에도 멋을 중요시한 것이다. 중세 유럽 배경 영화에는 검투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레이스 달린 하얀색 연미복을 입은 두 남자의 칼싸움은 발레처럼 우아하다.

반면 세계의 허를 찌른 한국 펜싱은 빠르고 창의적이다. 바로 ‘발펜싱’이다. 구본길은 “유럽 선수들에 비해 신체조건이 불리한 우리가 믿을 건 빠른 발뿐이다. 그래서 올림픽을 준비할 때 발 운동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4강에서 세계 최강 이탈리아와 붙었다. 초반에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밀렸다. 점수차가 벌어지자 이탈리아 선수들의 폼생폼사가 시작됐다. 김정환은 “유럽에서 열린 올림픽이어서인지 이탈리아 선수들이 멋을 부렸다. 그냥 찔러도 되는 데 폼 나게 찌르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칼끼리 부딪치는 걸 최대한 줄이고 실리 전술을 폈는데 적중했다”고 회상했다.

결승에선 세계 2위 루마니아를 초반부터 몰아붙여 45-26의 완승을 거뒀다. 후보로 등록돼 있던 오은석은 결승전에 투입돼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한국펜싱 올림픽 단체전 첫 금메달이자 대한민국의 역대 올림픽 100번째 금메달은 그렇게 완성됐다.

● 3인 3색 검객들의 이야기

구본길은 축구실력 덕분에 펜싱에 입문했다. 대한민국에 축구 광풍이 불었던 2002년 대구 오성중학교 점심시간. 1학년 구본길은 친구들과 축구경기에서 육상선수 출신답게 바람처럼 운동장을 질주했다. 이 모습을 본 펜싱부 감독이 그를 불러 펜싱부로 데려갔다. “펜싱이 뭔지도 모르고 따라갔는데 장비에 반했다. 흰색 유니폼과 신비감을 주는 마스크도 멋있었지만 무엇보다 날렵한 은빛 칼에 마음을 뺏겼다.”

2009년 봄 국가대표 김정환은 은퇴를 고민하고 있었다. 영원한 후원자였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타계하면서 의욕을 잃었다. 대회가 열리는 곳이면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와서 경기를 녹화하고 모니터링을 해주던 분이었다. “훈련을 중단하고 집에서 쉬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가 모아놓은 비디오를 돌려보게 됐다. 내 훈련 모습에서 경기 장면까지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운동을 그만 둔다면 아버지의 정성을 배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칼을 잡았다.”

오은석은 중고교 시절 최고 성적이 3위였을 만큼 ‘별 볼일 없는 선수’였다. 그가 달라진 계기는 2002년 동의대 입학 직후 떠난 단체훈련이었다. “선배들의 뛰어난 실력을 보고 내 속에 숨어있던 승부욕이 타올랐다. 그해 3월 생애 첫 우승을 하며 펜싱에 눈뜨게 됐다. 자신감이 생기면서 성적도 좋아졌고 태극마크도 달게 됐다.”


● 따로 또 같이 인천 아시안게임 금 결의

“무조건 단체전 금메달이다. 개인전 성적은 그 다음이고.”

각각 따로 가진 스포츠동아와 전화 인터뷰.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의 목표를 묻자 입을 맞춘 듯 같은 대답을 했다. 이미 세계를 제패한 그들이지만 아시안 게임은 의미가 다르다. 4년 전 광저우대회만 떠올리면 아직도 피가 끓는다고 했다.

“중국과 결승전, 44대 44 마지막 1점을 남겨놓고 있었다. 동시에 공격을 했는데 심판이 중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실력보다 홈 텃세에 졌다.”

구본길은 개인전 금메달의 감격보다 결승전 은메달의 아쉬움이 더 컸다고 했다. 그래서 그 빚을 인천에서 갚고 싶다고 했다. 31세 동갑인 오은석과 김정환은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는 각오로 칼을 벼리고 있다.

가능성은 높다. 세 명 모두 검술에 물이 올랐다. 소속팀인 공단의 든든한 지원은 언제나 큰 힘이다. 2월 스페인에서 열린 펜싱월드컵 남자사브르 단체전에서 미국을 꺾고 우승했다. 김정환은 개인전까지 제패해 2관왕에 올랐다. 아시안게임 12년만의 한국 남자펜싱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탈환, 그들의 칼끝은 9월 인천을 겨누고 있다.


● 구본길

1989년 4월27일생(대구) /182cm·65kg /대구 만촌초-오성중·고-부산 동의대 /국민체육진흥공단(2011∼)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개인전 금, 2012런던올림픽 단체전 금


● 김정환

1983년 9월2일생(서울) /178cm·64kg /서울 신동초-신동중-홍대부고-한체대-국민대대학원-국민체육진흥공단(2011∼) /2009아시아선수권 개인전 금, 2012런던올림픽 단체전 금


● 오은석

1983년 4월2일생(경북 고령) /181cm·76kg /대구 영선초-대구중-오성고-부산 동의대-국민체육진흥공단(2004∼) /2002부산아시안게임 개인전 금, 2012런던올림픽 단체전 금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ajap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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