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리즈 역대 최다등판 투수로 올라선 삼성 배영수는 대기록의 기쁨보다 5차전 이후 삼성의 우승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를 더 고민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KS 최다 등판’ 역사를 쓰는 사나이
“컨트롤 미스로 홈런 2개 허용” 아쉬움
“밴헤켄 투구 보고 배워…더 집중할 것”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밴헤켄 투구를 보고 내가 많이 배웠다.”
삼성 배영수(33)는 9일 잠실구장에 훈련을 하러 나와 “억울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 전날의 아쉬움과 아픈 잔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듯했다.
KS에 들어가기 전 류중일 감독이 그에게 부여한 임무는 ‘+1 카드’였다. 선발투수가 조기에 강판될 때 투입되는 ‘스페어 선발’이었다. 8일 열린 한국시리즈(KS) 4차전에서 선발투수 제이디 마틴이 흔들리자 배영수는 2회부터 마운드에 올랐지만 결정적인 홈런 2방을 허용하면서 팀이 3-9로 패하는 장면을 지켜봐야했다. 0-2로 뒤진 2회말 1사 1·2루에서 구원등판한 그는 첫 타자 이택근을 삼진으로 돌려세웠지만 유한준에게 3점홈런을 맞고 말았다. 4회 1사 1루서는 이택근에게 좌월 2점홈런을 내줬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0-7이 되면서 사실상 승부는 끝났다. 맞은편의 넥센 선발투수 앤디 밴헤켄은 역투를 펼쳐나갔다. 7회초 선두타자 야마이코 나바로에게 솔로홈런을 맞아 퍼펙트게임 행진이 중단됐지만 완벽했다. KS 1차전에서 3회말 선두타자 나바로에게 홈런을 맞은 뒤부터 이날 4차전 7회초 선두타자 나바로에게 다시 홈런을 맞기까지 2경기에 걸쳐 ‘30연속타자 범타’라는 KS 신기록을 작성했다. 30타자라면 ‘10이닝 퍼펙트게임’인 셈이다.
이날 밴헤켄의 역투와 배영수의 쓸쓸한 강판을 지켜본 팬들이라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질 법도 했다.
10년 전인 2004년 가을, 삼성의 에이스이자 대한민국 최고투수 배영수는 찬란했다. 현대와의 KS 무대. 그날도 4차전이었다. 배영수는 150km대의 불같은 강속구와 완벽한 컨트롤로 10회까지 현대 타자에게 단 1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다. 볼넷만 1개. 10이닝 노히트노런을 이어가던 배영수는 마운드를 내려왔고, 양 팀이 연장 12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서 ‘10이닝 노히트노런’은 비공인 기록으로 남게 됐다. 이날 밴헤켄이 작성한 30연속타자 범타 신기록은 10년 전 배영수가 KS 1차전과 4차전에 걸쳐 만든 24연속타자 범타 기록을 넘어선 것이어서 더욱 묘했다. 이에 대해 배영수는 “이제 더 이상 과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면서 “중요한 것은 현재다. 4차전에서 컨트롤 미스로 홈런 2개를 내주면서 팀을 어렵게 만들었다. 감독님이 나를 그때 기용한 것은 그려둔 그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라며 자책했다. 그러면서 그는 “밴헤켄은 정말 좋은 투수였다. 실투가 없더라. 어떻게 저렇게 집중력이 좋을까 싶어 감탄했다”며 “이제 최대 3게임 남았다. 10년 전 일도 과거고, 어제 일도 과거다. 내일을 준비해야한다. 내게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등판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좀 더 집중해 팀 우승에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2000년대 중반, 자신의 팔꿈치를 바쳐 KS 우승 신화를 만들었던 ‘푸른피의 에이스’ 배영수. 그는 4차전 등판으로 역대 KS 개인통산 최다경기(24) 등판 신기록을 이어갔다.
잠실|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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