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의 선택은 결국 명예로운 은퇴였다

입력 2016-11-22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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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홍성흔. 스포츠동아DB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 홍성흔(39)이 은퇴를 선언했다. 홍성흔은 22일 구단을 통해 은퇴사를 전하고 정든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했다.

18년간의 현역 생활을 마감한 홍성흔은 은퇴사에서 “팬들에게 마지막까지 멋진 모습을 보이지 못해 아쉽다”면서 “2군에서 땀 흘리는 젊은 후배들을 보며 내가 자리를 비워주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됐다”며 은퇴 결심 배경을 밝혔다.

은퇴사에서 알 수 있듯 홍성흔이 은퇴를 결심하기까지는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현역 연장의지가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 홍성흔은 내년이면 마흔이지만 힘에 있어 젊은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고, 개인통산 2000경기 출장까지도 단 43게임이 남아 있어 내년 시즌까지 현역으로 뛰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명예로운 은퇴’를 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구단 입장은 달랐다. 이미 세대교체를 거쳐 올해 통합우승을 거머쥔 두산으로선 40대 노장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내년 팀 전력에서도 홍성흔의 이름은 배제돼 있었다. 결국 양측은 같은 문제를 놓고 최근까지 대립했고, 홍성흔이 ‘은퇴’를 결심하며 구단과 레전드는 결별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화려했던 18년이었다. 경희대 4학년 재학 시절이던 1998년 OB의 1차지명을 받은 신예포수 홍성흔은 팀 이름이 두산으로 바뀐 1999년부터 안방을 지켰다. 당시 111경기에 나와 타율 0.258, 16홈런, 63타점으로 활약해 생애 한번뿐인 신인상을 손에 거머쥐었다. 1990년 LG 김동수에 이은 역대 2번째 포수 신인왕.

두산 포수 시절 홍성흔.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이후부턴 ‘안방마님’ 홍성흔의 시대가 열렸다. 그는 호쾌한 타격과 화끈한 쇼맨십을 앞세워 KBO리그를 대표하는 포수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포수도 홍성흔이었다. 그의 등장에 진갑용과 이도형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팀을 떠나기도 했다. 1998방콕아시안게임과 2002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그리고 2000시드니올림픽 동메달도 목에 걸었다.

부침도 겪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포수로서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2007년 허벅지 부상과 어깨 약화 등의 문제로 포수 마스크를 내려놓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결국 홍성흔은 2008년 5월 포수 은퇴식을 거행하며 지명타자로 전향했다. 2009년 롯데 이적 후엔 ‘갈매기 타법’을 장착해 4년 연속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2008~2011년)라는 영예도 맛봤다.

프로 인생의 마지막은 친정팀에서 맞이했다. 2012시즌 종료 후 다시 FA가 된 홍성흔은 두산으로 돌아와 마지막 전성기를 꿈꿨다. 그는 지난해 역대 우타자 최초 2000안타를 돌파했지만, 40대에 접어든 베테랑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결국 2016년은 그가 프로무대에서 뛴 마지막 시즌이 됐다. 통산성적은 1957경기 6789타수 타율 0.301, 2046안타, 208홈런, 1120타점.
화려한 발자취의 홍성흔은 팬들을 즐겁게 만들줄 알았던 스타플레이어이기도 했다. 그라운드 안에선 유쾌한 팬서비스로 올스타전 MVP에 두 차례(2006, 2010년)나 올랐고, 비시즌에는 여러 TV프로그램에 거리낌 없이 출연해 특유의 끼를 발산했다.

이제 현역 유니폼을 벗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홍성흔의 2막은 어떤 모습일까.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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