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타자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롯데 번즈-두산 에반스-NC 스크럭스-LG 히메네스-KIA 버나디나-kt 모넬-삼성 러프-한화 로사리오-넥센 대니 돈-SK 워스.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SK 와이번스
2. 비상사태시 심각한 위협으로부터 선수들과 구단을 보호하기 위해 시즌 중단과 같은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가?
3. KBO와 구단들은 안보위협 또는 비상사태에 관한 실시간 정보를 선수들에게 제공하는 절차가 있는가?
4. 선수계약상 안보상의 문제로 선수가 경기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5. 안보상 비상사태 발생시 외국인선수들이 그들 대사관과 연결되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이상은 최근 메이저리그 선수노조(MLBPA)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KPBPA·선수협)에 보낸 문의내용이다. 요즘 KBO리그 각 구단마다 수준급의 실력을 지닌 전직 메이저리거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MLBPA 차원에서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 체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한반도 정세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외국인선수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동해에 진입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되고 있다. 그러자 외국인 선수도 선수지만, 자국에 있는 가족들의 걱정이 더 큰 듯하다.
남북한 대치 국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이야 오히려 이 부분에 대해 둔감할 수 있지만, 입장을 바꿔 놓고 보면 외국인선수들과 그 가족들의 불안감과 공포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선수협 김선웅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MLBPA측에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은 낮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보냈다. 그러나 선수협에 가입하지 않은 외국인선수들이긴 하지만 이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제도와 장치를 만들 필요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KBO측에 MLBPA가 보낸 문의 내용을 알리고 최근 실무자끼리 만나 협의를 했다.
물론 현재 KBO규약이나 KBO리그규정 상으로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뚜렷한 매뉴얼이 없는 게 사실이다. 외국인선수들도 당연히 한국인들처럼 민방위재난통제본부 등의 통제를 따르며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외국인들은 그런 제도가 있는지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심리가 더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말로만 안심시킬 것이 아니라, 미리 만든 영문 매뉴얼이라도 제공한다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공포증에 시달리는 외국인선수들, 그리고 자국의 가족들은 한결 더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KBO리그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종목의 외국인선수들에게도 해당되는 사안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혹은 관련 정부 부처 등과 협의하면 매뉴얼을 만드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이에 앞서 KBO와 각 구단 실무자들도 이를 공론화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불안감에 떨고 있는 외국인선수들에 대한 작은 배려일지 모른다. MLBPA에서 선수협에 문의한 내용을 두고 ‘호들갑’이라고 무시하기보다는 그들의 불안심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 삼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