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골 - 70도움’ 무덤덤…진짜 목표, 팀 우승 남았다

입력 2017-09-1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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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클래스가 있다. 전북현대의 이동국이 9월 17일 고향 포항에서 벌어진 포항 스틸러스와의 2017 K리그 클래식 29R에서 전인미답의 70골-70도움을 달성한 뒤 두 팔을 벌려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 K리그 새 역사 쓴 전북현대 이 동 국

“개인 기록보다는 팀 우승 중요…아직 갈 길이 멀다
30대 후반 선수 부상 기다려준 전북…신뢰로 똘똘
김신욱 에두와 공격수 포지션 경쟁? 우리는 동반자”


한국축구는 영웅이 필요하다. 다행히 존재한다. K리그 클래식 최고의 스트라이커 이동국(38·전북현대)이다. 존재만으로도 든든하다. 또 믿음직스럽다. 이전에도 영웅이었지만 시련도 겪었기에 스토리는 더욱 풍성해졌다.

이동국은 9월 17일 자신이 나고 자란 포항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포항스틸야드에서 펼쳐진 포항 스틸러스와의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정규리그 29라운드에 선발 출격해 1골·2도움을 기록하며 전북의 4-0 승리를 진두지휘했다. K리그에서 가장 먼저 70(골)-70(도움)도 달성했다. 이는 40년 가까이 되는 한국 프로축구 역사에서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현 국가대표팀 사령탑 신태용이 현역시절 99 골·68도움을 한 것을 시작으로 에닝요, 몰리나가 나란히 60-60 고지에는 올라봤지만 70-70 은 아직 누구도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대단한 사실은 또 있다. 이날 포항전은 이동국의 K리그 460번째 출전이었다. 197골·71도움을 기록했다. 공격포인트 268회. 2경기에 1개 이상 꾸준히 팀 득점에 관여했다. 이처럼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웠음에도 정작 주인공은 담담하기만 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올 시즌 목표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절반 밖에 오지 않았다”고 부지런히 채찍질을 가할 뿐이다. 골잡이의 배고픔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맹수의 본능을 가져야 공격수다.

전북 이동국. 사진제공|전북현대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

“솔직히 거의 의식하지 않았다. (포항전)전반전이 끝나고 70 -70에 성공했을 때에도 딱히 실감나거나 그렇진 않았다. 오히려 무덤덤했다. 물론 굉장히 값지고 감사할 일이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올해 진짜 목표(우승)를 달성한 것도 아니다. 나는 단순히 기록을 위해 축구를 하지 않는다.”


-처음 프로에 데뷔했을 때가 기억나는지.

“포항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입성했다. 오직 앞만 보고 뛰어다녔다. 시선은 항상 상대 골문을 향해 있었다. 이곳저곳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항상 쫓겼다. 글쎄, 철부지였던 시절이었다.”

이동국은 1998프랑스월드컵을 전후로 한국축구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데뷔 시즌부터 강렬했다. 11골·2도움으로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광주상무(현 상주)에서 보낸 2년, 짧은 독일생활(베르더 브레멘 임대·2001년 1∼7월)을 제외하곤 줄곧 포항에서만 뛰었다. 이후 미들즈브러(잉글랜드)에서 1년 반 가량 잃어버린 시간을 보냈고, 2008년 여름 성남일화(현 성남FC)에 새 둥지를 틀었다가 2009시즌을 앞두고 전북에 합류했다.


-전북과 함께 현역 인생이 활짝 폈다.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팀이다. 내가 빛날 수 있는 것은 모든 전북 구성원의 도움이 컸다. 개인적인 성장은 물론이고 우승에, 연속 우승에, 또 아시아 정상까지 이것저것 후회 없이 많은 경험을 했다.”

전북 이동국. 스포츠동아DB


미국의 인기 수사드라마 NCIS의 대사 중에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 “우리 팀에 필요한 사람은 팀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을 품어줄) 팀이 간절히 필요한 인물이다.” 이동국의 당시 처지가 그랬다. 성남에서 사실상 방출된 그를 품은 건 전북 최강희 감독이었다. 좋은 공격수가 필요한 전북의 입장보다 자신의 그대로를 믿고 신뢰할 조직이 필요한 이동국이 훨씬 간절했다.


-프로 20년차다. 무엇이 바뀌었나.

“한 가지만 꼽자면 여유? 기술은 좀처럼 늘지 않더라. 지금의 후배들이 훨씬 기량도 좋고 우수하다. 다만 나이를 한 살씩 먹으며 여유가 생겼다. 앞을 보면서도 좌우, 후방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 득점감각? 항상 그대로다. 체력도 아직까지는 괜찮다. 경기 다음날은 쑤시고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그래도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면 나쁜 신호는 아니다.”


-올 시즌 잔부상이 겹쳤다. 쫓기지 않았나.

“20대가 아닌 것은 틀림없다. 근육부상으로 예기치 않은 휴식을 하면서 내 자신을 돌아봤다. 심적으로 쫓기기보다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아직 뛸 수 있을까?’ ‘괜찮을까?’ 다행히 팀이 기다려줬다. 30대 후반 선수를 어디서 기다려주나? 신뢰이고 믿음이다. 또 우리 감독님은 내게 풀타임을 맡길 생각이 없다. 60분 정도 뛸 몸만 유지하면 된다.”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이 치열 한데.

“경쟁이 아니다. 어린 시절이라면 신경이 쓰였을 거다. 지금은 그냥 동반자다. 나 홀로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다. 부담과 고통을 나눠준다. 내가 못하면 (김)신욱과 에두가 하면 된다. 조금씩 하다보니 공격포인트 10개(5골·5 도움)가 됐다. 득점을 두 자릿수로 해야 하는데, 합산하게 됐다. 아직 5골 이상은 더 넣어야 한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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