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정해성 “2002년 월드컵 분위기와 견줄만하다”

입력 2018-01-24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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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성 감독. 사진제공|HAGL

세상 참 많이 변했다. 평생 거들떠보지도 않던 베트남축구가 어느 순간 우리의 관심사가 돼 버렸다. 베트남이 23일 카타르를 승부차기로 꺾고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에 오르자, 베트남 현지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이슈가 됐다. 한국인 지도자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베트남대표팀은 박항서 감독과 이영진 수석코치의 부임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베트남으로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AFC 주관 대회 챔피언십에서 처음 결승에 올랐기 때문이다. 베트남 현지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다. 더불어 박 감독은 2002년의 히딩크에 비유되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베트남 프로축구 호앙아인잘라이(HAGL) FC 총감독을 맡고 있는 정해성 감독은 “정말 난리가 났다”고 했다. 정 감독은 지난해 10월 박 감독과 비슷한 시기에 베트남에 진출했다. 정 감독은 “우리 팀 코치들 얘기로는 아마도 몇 명은 죽었을 것이라고 하더라”면서 “농담으로 한 소리지만 그만큼 열기가 뜨겁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어제(23일) 저녁에는 베트남 전역이 길거리 응원을 한 듯하다. 베트남 국기 금성홍기가 길거리를 뒤덮었다. 운동장에서 모여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도 많았다. 거리에선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요란했다”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모든 언론이 다 축구 얘기뿐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2002년 월드컵의 한국에 버금가는 그런 분위기라고 상상하면 된다”며 베트남 국민들이 얼마나 높은 관심을 보이는지를 설명했다. 정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박항서 감독과 함께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한 코치였다. 그 때의 분위기와 느낌을 잘 안다.

정 감독에 따르면, 베트남에서는 남자 4명만 모이면 축구 이야기와 내기 문화가 특징이라고 한다. 그만큼 축구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이번 대회 이전까지 U-23 대표팀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모든 관심이 젊은 대표팀에 집중됐다. 이유가 뭘까.

정 감독은 “지금 U-23 대표팀은 10년 전부터 정책적으로 육성된 선수들이다. 국가에서 투자를 하며 키운 선수들이다 보니 국민들의 기대도 크고, 관심도 높다. 이번 대회에 나선 주축들이 기대를 받는 선수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회에 관심이 쏠렸고, 승승장구하는 성적 때문에 국민적인 관심사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베트남의 황금세대들이다. 정 감독이 맡고 있는 HAGL 소속 선수도 무려 6명이나 된다. 이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클럽에서도 주전으로 뛰고 있다. 가능성과 실력을 모두 겸비한 선수들이다. 정 감독은 “1998년 월드컵 이후 이동국 고종수 안정환 등 젊은 선수들 덕분에 K리그의 인기가 높아진 것을 떠올려보면 된다. 지금 베트남은 그런 젊은 선수들 때문에 축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고 말했다.

베트남 언론들은 한국지도자를 집중 분석해 보도하고 있다. 축구 실력과 문화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이 한국지도자의 도움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게 보도의 요지다.

정 감독이 베트남 클럽을 맡으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식단을 바꾸는 일이었다. 베트남 선수들이 아침에 먹는 음식은 대부분 면 종류(라면, 국수 등)라고 한다. 그런 음식으로 축구경기에서 체력적으로 버텨내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식단을 바꾸면서 훈련이나 경기 모두 좋아졌다고 한다.

대표팀도 비슷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아울러 정신적으로 응집력을 키운 게 주효했다. 대표팀 또한 이런 정신적인 부분에서 성숙했다고 분석했다.

현재 U-23 대표선수들은 성인대표팀의 주축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정 감독은 “현지 분위기는 22~23세의 선수들이 베트남 국가대표팀의 주축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10년간은 이들이 베트남 축구를 이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한국축구도 이제 베트남을 너무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의 당부는 ‘방심은 금물’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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