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원.
# 2000년 1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1999시즌 후 양준혁은 각 팀 선수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8개 구단 주장들도 만났다. 그러나 구단들은 1988년보다 더 강경했다. 선수들은 구단의 겁박에 숨죽였다. 우여곡절 끝에 한화 이글스 송진우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희생을 감수한 큰 용기와 결단이었다. 송진우와 양준혁, 마해영, 박충식, 최태원 등은 2000시즌 후 선수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팀에서 실제 방출되기도 했다. 선수생명을 건 투쟁이었다.
정치권과 노동단체는 이들의 방출에 대응을 시작했다. 결국 선수협회는 정부의 개입으로 2001년 1월 합법적인 단체가 된다. 송진우는 ‘회장님’이라는 특별한 별명을 얻었다. 보복성 트레이드도 있었지만 이후 선수협회는 최저연봉 인상, 연봉 상한선 폐지를 이끌어냈다.
이후에도 큰 헌신은 이어졌다. 평소 살가운 선배 이미지가 아니었던 박재홍은 선수협회 회장으로 제10구단 창단 유보 결정에 반발해 올스타전 보이콧을 이끄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였다. 서재응과 이호준 등도 회장으로 헌신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이러한 용기와 희생 속에 설립됐다. 더 이상 선수협회 리더에 대한 눈에 보이는 불이익은 없다. 여전히 희생이 필요하지만 KBO의 고참 스타들 대부분은 과거 선배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를 쌓았다. 그러나 선수협회 회장은 20개월째 공석이다. 3일 총회에서도 회장 선출에 실패했다. 일부 구단은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선수들에게 이유를 물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회장을 맡아 줄 거라고 생각했던 선배 몇 명이 서로 거부하면서 이렇게 됐다”, “평소 리더 역할을 원하고 강경해 보였던 선배가 ‘난 안한다’고 고사하면서 각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富)에는 도덕적·사회적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부는 향락과 사치의 도구일 뿐이다. 희생적인 리더가 없는 집단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민심도 얻기 어렵다. 선수협회 구성원인 선수들 모두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