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브레이크] 뜬공 혁명? 야구엔 늘 정답이 없다!

입력 2019-04-0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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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 생산에 최적화된 키움 히어로즈 박병호의 멋진 스윙이다. KBO리그에서 시작된 ‘뜬공 혁명’과 발사각도는 아이러니하게 고교선수들에게는 큰 혼돈의 대상이 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홈런 생산에 최적화된 키움 히어로즈 박병호의 멋진 스윙이다. KBO리그에서 시작된 ‘뜬공 혁명’과 발사각도는 아이러니하게 고교선수들에게는 큰 혼돈의 대상이 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지금 아마추어야구계는 발사각의 맹점에 빠져 있다.”

미국에서 불어온 ‘뜬공 혁명(Fly Ball Revolution)’ 바람은 한국야구에도 정답처럼 여겨졌다. 군용 레이더를 활용한 트랙맨 등 추적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홈런이 나올 확률이 높은 타구’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다. 숫자로 야구를 다루는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에선 장타 확률이 높은 발사각 26~30도, 타구속도 98마일(약 158㎞) 이상의 타구를 ‘배럴 타구’로 정의했다. 자연스럽게 메이저리그(MLB)에선 타자들의 발사각 조정이 대세가 됐다. 공을 높게 퍼올리는 어퍼스윙으로 배럴 타구에 해당하는 발사각을 만드는 데 매진했다. 몇몇 성공 사례가 나오면서 미국은 물론 KBO리그에서도 뜬공 혁명이 대세를 이뤘다. 실제로 인위적 발사각 조정에 몰두했던 지난해 KT 위즈는 팀 홈런 2위(206개)에 올랐다.


● “뜬공 혁명,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발사각 조정으로 대표되는 뜬공 혁명은 결코 정답이 아니다. 최근 양상문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아마야구 현장을 찾은 뒤 깜짝 놀랐다. 양 감독은 “아마추어타자들이 전부 어퍼스윙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직 타격 메커니즘이 정립되지 않은 데다 힘도 갖추지 않은 타자들이 의식적으로 공을 띄우려고만 하니 제대로 된 타구가 나오지 않더라. 발사각의 맹점에 빠져있는데, 어느 정도 정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런 생각은 양 감독만의 의견이 아니다. 올 시즌에 앞서 부임한 샌디 게레로 KT 타격코치는 “모두가 홈런을 좋아하지만 누구나 홈런을 노릴 수는 없다. 인위적인 어퍼스윙은 메커니즘을 망칠 수 있다. 뜬공보다는 강한 라인드라이브 타구 생산이 더 중요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실제로 KT는 지난해 팀 홈런 2위에 올랐지만 팀 타율 9위(0.275), 팀 OPS(출루율+장타율) 7위(0.796)에 그쳤다. 홈런 자체는 SK 와이번스에 버금갔지만 생산성으로 이어지진 않은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무관 SK 타격코치는 “MLB 밀워키 브루어스는 20여 명의 마이너리거들에게 어퍼스윙을 장착시켰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자신의 메커니즘을 잃은 채 방출됐다”고 전했다.

이는 발사각 조정이 무조건적인 정답은 아니라는 의미다. 현장 지도자들이 ‘콘택트의 장인’으로 꼽는 민병헌(32·롯데)은 “특정한 발사각, 타구속도의 타구가 홈런 가능성이 높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 타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는 정말 힘들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한 가지 예를 들었다.

“나와 (박)병호(키움 히어로즈) 형이 같은 발사각의 타구를 만들었다고 하자. 병호 형의 타구는 홈런이 되겠지만 내 타구는 외야에서 잡힐 것이다. MLB에서 뜬공 혁명이 대세가 된 건 그들이 기본적으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타자들은 아니다. 결국 정확한 타이밍에 공을 때리는 게 먼저다.”


● 구종의 유행이 타격의 유행을 만든다?

일부 아마추어 타격 지도자들은 뜬공 혁명을 맹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 지도자들에게는 어퍼스윙을 장착시키는 게 아닌, 이 선수에게 발사각 조정이 효율적일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시될 필요가 있다. 김승관 롯데 타격코치는 “자신만의 메커니즘이 만들어지지 않은 선수들에게 인위적 조정은 치명적이다. 어깨가 빠진 채로 공을 띄우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배럴 타구를 만들고 싶을 때 만들고, 띄우고 싶을 때 띄운다면 그 선수는 타율 4할을 칠 것이다. 지나친 발사각 의존은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일침을 놓았다.

일부 지도자들은 ‘구종의 유행’에 따라 타자들의 스윙이 달라진다고 얘기했다. 양상문 감독은 “내가 현역 때만 해도 타격 지도자들은 무조건 다운스윙을 강조했다. 어떻게든 땅볼을 만들라는 분위기였다”고 회상했다. 타격이론 전문가인 김무관 타격코치는 “지금 투수들은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주로 구사한다. 포크볼, 싱커 등이 유행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어퍼스윙이 효과가 있었다”며 “MLB 투수들은 다시 하이 패스트볼을 꺼내들었다. 어퍼스윙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타자들의 스윙 유행도 다시 달라질 것”이라고 점쳤다.

수십 년간 야구와 함께한 원로들도 “야구 모르겠다. 정답이 없다”고 한다. 뜬공 혁명 역시 정답은 아니다. 다만 좋은 참고자료인 것은 분명하다. 결국 발사각 조정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메커니즘대로 공을 정확히 맞히는 일일 것이다.

인천|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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