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정지윤. 스포츠동아DB
장기 레이스에서 흐름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리그 최정상급의 선수라도 사이클이 떨어져 슬럼프에 빠지는 경험 한두 번은 통과의례다. 그러나 두 번째 시즌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슬럼프에 곧장 ‘2년차 징크스’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지난 시즌 신인왕 정지윤(19·현대건설)의 슬럼프 극복법은 ‘무념무상’이다.
정지윤은 2018~2019시즌 V리그 여자부 신인왕에 올랐다. 유효 투표수 29표 중 14표를 획득하며 최대 라이벌이었던 이주아(흥국생명·13표)를 단 한 표 차로 제쳤다. 29경기에서 210득점, 세트당 블로킹 0.33개를 기록하며 프로에 곧장 연착륙했기에 당당한 수상이었다.
이번 시즌에도 초반 흐름은 좋았다. 18일까지 시즌 공격 성공률은 42.3%인데 최근 경기에서는 연이어 20~30%대에 머물렀다. 스스로도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자책했다. 흐림이 꺾이며 2년차 징크스에 대한 우려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은 “성품이 도전적이고 긍정적이다. 다른 선수라면 이럴 때 2년차 징크스라는 늪에 빠질 텐데 털털하게 잘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믿음에 부응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지윤은 18일 IBK기업은행전에서 팀내 최다인 15득점(공격 성공률 55.6%)으로 펄펄 날며 세트스코어 3-0 승리에 앞장섰다. 주전 리베로 김연견이 이탈한 데다 ‘주포’ 헤일리 스펠만까지 주춤했지만 미들블로커진에서 정지윤이 해결해주자 쉬운 운영이 가능했다.
경기 후 정지윤은 “꼭 이겨야 하는 경기였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신난다”며 “감독님이 계속 자신감을 주문하셨다. 그래서 무너지지 않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스스로 꼽은 복잡함 해소법은 ‘그냥 막 하기’다. 정지윤은 “난 어릴 때부터 생각을 하면 경기가 안 풀렸다. 잠깐의 망설임이 실수로 이어진다. 생각을 비우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지윤은 지난 시즌 이주아와 신인왕 경쟁 구도가 한창 펼쳐질 때에도 특유의 부산 사투리로 “제가 ¤(성)에 안 차나요?”라고 반문할 만큼 여유와 자신감이 가득하다. 이러한 자신감에 생각 비우기가 더해지니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는 2년차 징크스도 가뿐히 넘고 있다.
무념무상이지만 설렘과 긴장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선두 현대건설은 2위 GS칼텍스와 23일 운명의 맞대결을 펼친다. 사실상 미리 보는 챔피언결정전이라고 불릴 만큼 무게감이 크다.
정지윤은 “한 달 전부터 그 경기만 생각했다”며 밝게 웃었다. 많은 관중의 함성을 즐기는 그에게 예매분이 몽땅 팔린 이날 경기는 설렘 가득이다. 물론 결과가 나쁘더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다. 2년차 정지윤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