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경기도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하나원큐 K리그2 2020‘ 제주 유나이티드와 부천FC1995 경기 후반전 제주 주민규가 선제 헤딩골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고 있다. 부천|김종원 기자 won@donga.com
2020년 5월 26일. K리그에는 정말 특별한 하루였다. 연고지 이전이란 아픈 추억을 공유한 부천FC1995와 제주 유나이티드가 사상 처음 공식 맞대결을 치렀기 때문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망라해 최강자를 가리는 FA컵이 아니라면 만나지 못할 것 같던 두 팀이지만, 지난 연말 큰 일이 벌어졌다. K리그1(1부)의 ‘터줏대감’ 제주가 최하위로 밀려나 K리그2(2부)로 강등되면서 ‘연고지 더비’가 예약됐다.
14년의 기다림이 현실이 된 날이다. 2013년 1월 동계전지훈련 연습경기 이후 처음 마주친 두 팀 프런트의 표정도 크게 엇갈렸다. 공교롭게도 부천은 개막 3연승을 달린 반면 제주는 1무2패의 예상 밖 부진으로 자존심을 구긴 상태다.
홈팀 부천 구단 직원들은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장외 이벤트를 마련했다. 승리도 중요하지만 매치업 자체가 정말 놀랍다”며 미소를 지었다. 제주 프런트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며 씁쓸해했다.
다만 하늘이 모든 것을 허락하진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불가피해진 무관중 경기는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평소라면 “부~천”을 외치는 팬들의 강렬한 응원전이 펼쳐졌겠지만, 최대 3만8000명까지 수용하는 부천종합운동장은 을씨년스러웠다. 무슨 영문인지 킥오프 시각에 가까워지자 구슬픈 비까지 내렸다.
그러나 부천 팬들의 뜨거운 정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천SK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천의 공식 서포터스로 남아있는 ‘헤르메스’는 제주의 강등 직후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한 데 이어 “우리 선수들이 지옥을 보여줄 것”이라며 ‘적개심’을 드러내왔다.
어릴 적부터 부천을 사랑했고, 군 복무 중 제주의 탄생 소식을 접한 한 열혈 팬은 “입대 전까지 대부분의 원정경기를 따라다니며 애정을 보낸 팀이 어느 날 떠났다. 오늘 경기를 직관하지 못해 아쉽다. 적장이 부천 출신 남기일 감독이지만, 시즌 마지막 날 제주를 끌어내리고 우리가 K리그1로 올라가는 역사를 이뤘으면 한다”는 ‘랜선 응원’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