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사커] 감독들의 신경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입력 2020-06-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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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최용수 감독(왼쪽), 성남 김남일 감독. 스포츠동아DB

그라운드의 주역은 당연히 선수다.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다. 뛰어난 선수가 많아야 이기는 횟수가 늘어난다. 덩달아 팬도 많아진다.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거나 키우는 이유다. 선수뿐 아니다. 감독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다. 감독 스타일은 곧 팀 색깔이다. 비싼 돈 들여 능력 있는 지도자를 데려오는 이유다. 감독은 리그 전체의 흥행에도 영향을 미친다. 독특한 전술로 판도를 바꾸면서 팬을 사로잡기도 한다.

감독끼리의 자존심 대결은 또 다른 흥행요소다. 대표적인 게 ‘김호 vs 조광래’ 감독의 승부다. K리그를 대표하는 지략가인 이들이 1990년대 말부터 벌인 신경전은 상상을 초월했다. 구단의 모그룹인 삼성과 LG의 대결로 확장됐을 정도였다. 선수나 구단 직원, 응원단까지 결코 양보는 없었다. 이런 텃밭에서 생긴 게 흥행의 대명사인 슈퍼매치다.

지난 주 K리그의 주연은 감독들이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이 벌인 벤치 대결은 압권이었다. ‘서울 최용수 vs 성남 김남일’, ‘대전 황선홍 vs 경남 설기현’의 대결 구도는 누가 봐도 흥미로웠다. 선배는 선배대로, 후배는 후배대로 이겨야할 명분은 충분했다.

경기 전 초점이 된 건 김 감독의 도발이었다. 지난해 12월 취임 때 “가장 이기고 싶은 팀은 서울이다. 따로 이유가 없다. 그냥 이기고 싶다”며 선배에게 도전장을 낸 발언이 이번에 크게 부각되면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최 감독은 “더 자극을 해줬으면 좋겠다”며 노련하게 맞받았다. 둘은 월드컵 동료로 가까울 뿐 아니라 지도자로도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2016년 여름 최 감독이 서울을 떠나 중국 무대로 갔을 때 김 감독은 코치로 동행했다. 그래서 서로가 너무 잘 안다. 그런 인간적인 관계 덕분에 자극적인 도발도 가능했을 것이다.

경기는 긴장감이 넘쳤다. 서로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상대를 괴롭혔다. 쉴 새 없는 공방전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뜨거웠다. 결과는 성남이 1-0으로 이겼다. 김 감독은 “기 싸움에서 지기 싫었다”며 승리를 만끽했고, 최 감독은 “더 성장하고 성공하는 감독이 됐으면 한다”고 축하를 보냈다. 하지만 최 감독은 다음 경기를 위해 복수의 칼을 준비했을 것이다.

같은 공격수 출신으로 절친한 황 감독과 설 감독도 “승부의 세계에서는 결코 지고 싶지 않다”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실제 경기도 흥미진진했다. 초짜인 설 감독이 베테랑 황 감독을 패배 직전까지 몰아넣었고, 막판에 황 감독의 노련미가 빛을 발하며 2-2로 비겼다. ‘장군’ ‘멍군’으로 끝난 가운데 라이벌전이라 불릴 만큼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황 감독은 설 감독에 대해 “감독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좋아하는 후배이기에 잘 했으면 한다”고 응원했고, 설 감독은 “많은 걸 배웠다”며 첫 대결 소감을 밝혔다. 팬들은 아마도 다음 대결 날짜를 찾아봤을 법하다.

이번 월드컵 스타 출신의 라이벌전들은 소문이 많이 났고, 다행히 제법 흥이 난 잔치였다. 팬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애썼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울러 새로운 흥행요소가 생겼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이런 라이벌전은 계속 생겨나야한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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