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세상을 떠난 고유민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가 ‘스포카도’를 통해 공개됐다. 고인은 생전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힘을 얻었으나 인터뷰 2주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사진캡쳐 | 스포카도
스포츠선수에게 흔히 따라붙는 인식이다. 일반인에 비해 운동능력이 뛰어나고 엄격한 규율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십수 년간 펼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편견이다. 일반인보다 심신이 강할지언정, 도를 넘는 인신공격을 매일 같이 받는 상황을 견디기는 어렵다. 7월의 마지막 날 세상을 떠난 고유민이 털어놓은 마지막 속내에도 이러한 고충이 담겨있다.
종합 스포츠미디어 ‘스포카도’는 3일 밤 유튜브 ‘헤비멘탈’ 프로그램을 통해 고(故) 고유민의 생전 인터뷰를 공개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2주 전 촬영된 영상으로, 비극 이후 영상을 폐기할 생각이었으나 유가족의 동의로 세상에 알려졌다. 스포카도 관계자는 “영상 공개까지 고민이 정말 많았다. 유가족 측에서 악플로 인해 고통 받는 선수가 더는 나오면 안 된다고 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약 17분의 영상에서 고인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2013~2014시즌을 앞두고 레프트로 현대건설에 입단해 프로에서도 인정받았으나 2019~2020시즌 팀 사정상 갑작스레 리베로로 포지션을 옮기며 문제가 불거졌다. 배구 인생 내내 해본 적 없는 포지션. 부진이 거듭되자 기사에 악플이 달리는 것은 물론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쇄도했다. 고인은 인터뷰 내내 “힘들다. 이제 그만 애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캡쳐 | 스포카도
부진했을 때 정당한 비판을 받는 것은 프로스포츠 선수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도를 넘는 비판은 얘기가 달라진다. 숱한 프로 선수들이 악플로 병들고 있다. 한 베테랑 야구선수는 사석에서 “돈 많고 화려한 삶을 사는 연예인들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프로에서 슬럼프를 겪고 여론의 포화를 맞자 조금은 알 것 같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국내 최대 스포츠에이전시인 리코스포츠와 플레이아데스는 3일 “선수는 물론 그 가족에게도 악의적인 댓글을 보내는 이들에게 강경하게 나설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특정 선수 및 가족들을 비방하는 내용의 공개적인 댓글은 형법 제307조의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또는 형법 제311조의 모욕죄에 해당되며, 가해자는 민법 제764조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
연예인들의 거듭된 극단적 선택. 포털사이트 기사창 연예 섹션에는 댓글창이 막혀있다. 하지만 프로스포츠는 여전히 악플의 위험에 노출돼있다. 승부에 자신의 돈을 베팅 했으나 적중에 실패한 이들은 원색적인 비난으로 선수는 물론 스포츠계 전체를 아프게 하고 있다. 선수도 사람이다. 특별히 강한 것은 아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