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금융그룹 진상헌(왼쪽)-대한항공 한선수. 스포츠동아DB
진상헌은 모든 공을 세터 이민규에게 돌렸다. “(이)민규의 토스가 좋다. 공을 때리고 싶은 곳에 때릴 수 있게 준다. 그래서 편하게 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로 끝났으면 좋았을 테지만 “(이)민규가 (한)선수보다 토스를 잘 하는 것 같다”는 발언까지 했다. 함께 인터뷰를 한 이민규는 즉각 손사래를 치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악의는 전혀 없었고, 동료를 위한 립 서비스 차원의 표현으로 보인다.
한선수와 진상헌은 한양대 동기다. 2007~2008시즌 신인드래프트 때 함께 대한항공의 선택을 받았다. 진상헌이 1라운드 3순위, 한선수가 2라운드 2순위였다. 당시 대한항공은 인하대 출신 세터 유광우를 원했지만 삼성화재가 구슬추첨에서 2순위를 차지해 먼저 지명했다. 대한항공은 두 선수를 묶어 유광우와 바꾸자고 제의했지만 삼성화재는 거부했다.
유광우는 돌고 돌아 지금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고 있고, 진상헌은 OK금융그룹의 첫 번째 외부영입 FA가 됐다. 대한항공 시절 한선수의 절묘한 연결 덕분에 많은 기록을 세웠던 진상헌이 그 고마움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반대로 한선수도 진상헌이 도와줬기에 V리그를 대표하는 세터로 롱런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세터와 센터는 운명공동체인데, 진상헌의 발언으로 한선수는 졸지에 후배 이민규와 기량이 비교되는 처지에 놓였다.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선수들에게 다른 선수와 비교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외국인선수들이 V리그의 트라이아웃 제도를 싫어하는 근본적 이유다. 이들은 다른 선수와 함께 시험을 보고 기량이 비교가 된다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낀다.
진상헌의 그날 밤 먼저 한선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혹시 자신의 발언에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한선수는 “뭘 그런 것을 가지고 그러냐”면서 쿨 하게 넘겼다고 한다. 마침 대한항공과 OK금융그룹은 12월 3일 안산에서 만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