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에게 직접 듣는 리빌딩의 속사정

입력 2020-11-30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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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스포츠동아DB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스포츠동아DB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44)은 V리그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을 벌였다. 구단이 아닌 감독이 나서서 자발적 리빌딩을 시작했다. 그것도 시즌 도중이다. 비싼 몸값의 선수단을 꾸릴 구단의 지원이 모자라 강제적 리빌딩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기존 멤버로 시즌을 치르면 최소한 ‘봄배구’는 충분한 전력이었지만 포기했다.

시즌에 앞서 우승 세터 이승원을 바꿨고, 시즌 도중에는 국가대표 주전 센터 2명(신영석-김재휘)을 트레이드하며 신인지명권과 프로 2년차 세터를 받았다. 그 여파로 팀은 6연패도 경험했다. 27일 우리카드전에 출전한 선발 멤버 중 최민호를 제외한 6명의 얼굴은 지난 시즌과 달랐다. 그래서 많은 배구 관계자들은 최 감독의 의도를 궁금해한다.

감독에게 리빌딩의 이유와 목표를 묻다!
-왜 시즌 도중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비시즌부터 여러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시즌에 들어가면 어떤 팀에서든 트레이드 얘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침 한국전력, KB손해보험과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져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


-가만히 두면 봄배구는 갈 전력의 팀이었는데.

“시즌 전 구단에게 ‘지금 성적이 좋더라도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시도하겠다. 준비과정은 2~3년 걸릴 것’이라고 미리 얘기했다. 그 선택이 쉽지는 않았다. 떠난 선수들 모두가 아픈 손가락이었지만 팀을 위한 어려운 선택이 내가 할 일이라고 판단했다. 코치들에게도 ‘우리가 잘 되려고 우리의 것만 하면 무리수를 두지 않겠느냐. 시도할 수 있을 때 하자. 실패하더라도 다음 사람에게 좋은 유산을 남기자’고 얘기했다. 많이 상의했다.”


-지난 5시즌 동안 2번 우승하고 4연속 챔프전에 갔던 팀인데 변화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탄탄한 기반을 갖춘 선수구성이다. 연속우승을 하는 팀을 만들기 위한 시도다. 다행히 구단이 많은 이해를 해줘서 큰 힘이 됐다. 구단주께서 ‘결정하셨으면 자신을 믿고 과감히 실천하세요’라고 해주셨는데 그 말이 큰 힘이 됐다.”(정태영 구단주는 주장 신영석의 트레이드가 발표된 뒤 최 감독의 결단을 지지하고 다른 팀 선수가 된 신영석을 언제라도 응원하겠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감독이 선택한 리빌딩에 큰 힘을 실어주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이런 변화로 만들 현대캐피탈의 새로운 배구는 어떤 형태인가.

“지금 우리의 배구가 어디를 걸어가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많은 팀들이 스피드배구를 따라하는데 일본도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가 지금 장신화를 선택해 일본의 실패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다. 앞으로 신인드래프트에서 점점 장신선수가 나오지 않는 추세에서 변화가 필요했다. 지금 우리 배구에 필요한 것은 선수들의 기술과 탄력, 빠른 발이라고 봤다. 기본기 없이 장신만 갖춘 선수보다는 스피드와 기본기를 갖춘 선수들로 구성된 팀을 만들고 싶었다. 상대의 높이를 이기기 위해 머리싸움을 잘하고, 범실을 줄이고, 데이터를 잘 이용해 상대를 공략하는 그런 배구를 원한다.”

떠나고 남는 자들의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
-신영석은 새로운 팀에서 ‘오랜만에 배구에 설렘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 팀을 떠난 뒤 전화가 왔다. ‘감독님, 잘 왔어요. 열심히 잘 할게요’라고 해서 ‘너는 걱정도 안 해’라고 얘기해줬다. 신영석은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고 안주하지 않으면서 더 잘 할 것이다. 나머지 배구인생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승원도 삼성화재로 옮긴 뒤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로 선수를 위한 트레이드였지만 남은 선수들에게는 트레이드가 충격을 줬을 것 같은데.

“신영석과 황동일이 인사하고 팀을 떠나는데 눈물바다였다. 훈련시간이 됐는데 운동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감정을 가지고 쉴 수도 없어 선수들과 미팅을 했다. 선수들에게 ‘이해한다. 너희들 마음이 아프고 이별의 상처도 알겠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라. 우리는 시즌 중이다. 개인감정은 남겨둬라. 우리는 팀으로 경기를 해야 하기에 개인감정과 경기는 따로 가져가야 한다’며 일부러 냉정하게 얘기했다.”


-이번 리빌딩으로 배구 이해도가 높은 베테랑들이 많이 떠났다.

“이제 나도, 코치들도, 우리 선수들도 배구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이전까지는 베테랑들에게 편하게 쉽게 했던 말들도 어린 선수들에게는 풀어서 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한국배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번에 영입한 세터 김명관의 성장이 필요하다.

“처음에 와서 면담을 했는데 속공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너를 완전히 바꾸겠다. 전위 세 자리에서만 쓰는 반쪽자리 선수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게 아니라면 포지션도 바꿔주겠다. 선택하라’고 했다. 김명관도 변화를 따르겠다고 했다.”


-원대한 목표는 좋지만 그래도 이겨야 하지 않겠나.

“트레이드 이후 불안감도 떨쳐야 하고 패배에 선수들이 익숙해지지 않고 승리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그런 훈련을 많이 하고 있다. 전역한 허수봉이 27일 경기부터 가세하고 내년에 전광인이 복귀하면 내가 구상하는 배구의 바탕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그 이후 신인드래프트에서 우리가 필요한 부분을 보완할 생각이다.”

모든 감독들은 가능한 한 자신의 계약기간 동안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 성적을 올리려고 한다. 그 욕심이 커지면 팀에는 후유증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좋은 감독은 성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떠난 뒤를 봐야 한다. 힘들게 밭을 갈고 뿌린 씨앗이 자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과실은 다음 감독이 가져갈 수도 있다. 그래서 감독이 주도하는 리빌딩은 드물지만, 최 감독은 용감하게 그 길을 선택했다. 버려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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