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해야 돼” 내부인식 바꾼 선수협, 외부시선도 달라진다

입력 2020-12-17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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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양의지-LG 김현수-KT 황재균(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선수들 모두 회장 자리를 맡으려고 하지 않았다. 직접 해보니 힘이 없는 조직이라고 느껴져 힘들었다.”

이대호 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회장(38)이 최근 불거진 판공비 논란을 해명하기 위해 기자회견에 나서 한 말이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선수협은 ‘죽은 조직’처럼 여겨졌고, 선수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런 선수협에 변화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7일 이사회에서 양의지(33·NC 다이노스) 회장을 선출한 뒤 적극적 움직임이 시작됐다. 15일 구단별 선수 3명씩이 참여한 총회에선 김현수(32·LG 트윈스), 황재균(33·KT 위즈), 이재원(32·SK 와이번스)을 부회장으로 임명했다. 정관상 부회장 자리가 없는데, 정관을 고치겠다는 의사까지 드러냈다.

사실 양의지의 회장 선출 전부터 선수들 사이에선 변화의 공기가 감지됐다. 당시 양의지와 김현수 중 한 명이 회장으로 선출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는데, 선수단 투표로 누가 당선되든 마다하지 않고 선수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 결과가 김현수 등 3인의 부회장 선출이다. 양의지는 7일 이사회를 마친 뒤 2차 드래프트 폐지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조속히 집행부를 구성하겠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선수협은 노조가 아니다. 자연히 노사협상의 대등한 파트너로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원하는 것이 있어도 이른바 ‘쟁의’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선수들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면 KBO나 구단에서도 선수협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양의지가 회장 선출 직후 “선수협이 더는 힘이 없는 조직이라는 말을 들으면 안 된다”고 강변한 이유다.

선수협은 KBO 실행위원회에서 2차 드래프트 폐지(스포츠동아 12월 9일자 단독보도)를 의결하자 “출전 기회가 없는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는 제도다. 저연봉 및 저연차 선수에게 꼭 필요한 제도다”며 반대의사를 명확히 했다. 15일 총회를 마치고는 양의지를 필두로 10개 구단 대다수의 선수가 개인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나란히 드래프트 폐지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사진을 업로드했다. 이에 KBO는 16일 이사회에서 “2차 드래프트는 현행 방식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검토하고, 취지에 맞게 규정을 보완해 차기 실행위원회에서 재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수협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다.

냉정히 말해 지금까지의 선수협은 팬들의 지지, 구단이나 KBO의 인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연봉, 저연차 선수들은 보호받지 못했다. 하지만 3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구성원들의 뜻이 달라지고 있다. 내부 분위기는 어느 정도 환기됐다. 외부의 시선이 바뀔 차례다. 물론 그 열쇠는 선수협이 쥐고 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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