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는 새 시즌을 앞두고 마우리시오 파에스 감독을 선임했다. 창단 첫 외국인 감독 선임과 함께 ‘타도 대한항공’을 노린다. 사진제공|KOVO
이에 우리카드는 외국인 사령탑 카드를 꺼냈다. 이란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마우리시오 파에스 감독(61·브라질)을 선임했다. 반드시 챔피언 결정전 정상에 오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최근 우리카드의 훈련장인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만난 파에스 감독은 “아시아 무대에서 도전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전부터 V리그를 향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며 “우리카드에는 유독 잠재력이 높은 젊은 선수들이 많다. 이들이 코트 안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성적과 팀의 발전 모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에스 감독은 ‘빠른 배구’를 추구하는데, 선수들에게 리시브 후 빠른 공격 전환뿐 아니라 빠른 사고까지 요구한다. ‘빠른 배구’에 걸맞은 자원들을 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춰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각각 1순위 알리(20·이란)와 5순위 아히(26·네덜란드)를 지명했다.
외국인 감독 특유의 무한경쟁으로 새 시즌 ‘빠른 배구’ 장착에 속도를 더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한태준, 김지한, 한성정(28), 이상현 중 주전 자리를 보장받은 선수는 아무도 없다. 최근 경남 통영에서 벌어진 ‘2024 통영-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KOVO컵)’에선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 이강원(34), 아웃사이드 히터 김형근(22), 미들블로커 박준혁(27) 등 비주전 선수들을 고루 기용하며 새 시즌 준비를 마쳤다.
파에스 감독은 “베스트7로만 시즌을 치를 수도 없고, 경기 엔트리 17명의 선수를 매 경기 모두 출전시킬 수도 없다. 결국 한 팀으로서 시즌을 치러야 한다”며 “선발과 교체 선수 모두 상대가 대처하기 어렵게 코트에 들어올 때마다 역동성을 불어넣어야 한다. 각자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야 V리그 정상에 도전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카드 파에스 감독은 새 시즌 팀의 정상 등극 조건으로 뎁스와 시스템을 강조했다. “누가 코트에 들어서든 팀적으로 일관된 경기력을 보여야 한다”는 그는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자신했다. 사진제공|KOVO
-V리그 도전을 결정하게 된 배경은.
“월드리그가 열렸던 2010년대 중반 파나소닉(일본)을 이끌고 2번 정도 입국했었다. 당시 OK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과 맞붙은 기억이 있다. V리그 팀들의 잠재력이 높고, 아시아 무대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우리카드 지휘봉을 잡고 좋은 팀을 만들고, V리그 발전에도 기여하고 싶은 동기부여가 컸다.”
-우리카드는 강팀이지만 정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V리그 남자부 7개 구단 모두 누가 우승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전력차가 적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카드 역시 정상에 도전할 수 있는 좋은 팀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는 사고와 몸의 반응 모두 빠른 배구를 표방하나, 내 눈높이와 선수의 능력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배구는 짧은 시간에 동시에 생각하고 플레이해야 하는 시간이 많은 종목이지 않나.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더 많이 내려야 정상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독 뎁스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나.
“우리카드가 정상에 도전하려면 기복을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연습경기에서도 외국인선수라고 기회를 더 주거나, 신인이라고 덜 뛰는 일 없이 가급적 고른 선수 기용에 초점을 맞췄다. 훈련, 연습경기, KOVO컵 모두 퍼포먼스가 조금씩 달랐는데, 어떤 선수가 들어가든 우리카드만의 플레이를 잘 펼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정규리그 개막 후에는 모든 선수에게 기회를 주기 힘들겠지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늘 많다고 말하고 싶다. 현재로선 정규리그 개막 후 첫 2라운드, 3~6라운드, 포스트시즌으로 나눠 변화를 줄 계획이다.”
-외국인 감독들은 늘 블로킹과 디그 시스템을 강조하는 듯하다.
“지난 시즌 우리카드의 수비는 훌륭했다. 세트당 블로킹(2.631개·1위), 세트당 디그(10.298개·2위) 리시브 효율(38.49%·4위), 최소 범실(674개·2위) 수치 모두 인상적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기복을 줄여야 이길 수 있는데, 수비만큼은 기복이 적었다. 코트 안에서 선수들 간 커버 능력과 나쁜 공 처리 등만 보완하면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자신한다. 선수 구성이 지난 시즌과 거의 비슷해 집중력과 디테일을 입히려고 한다.”
-올 시즌 V리그 7개 구단 중 5개 팀이 외국인 사령탑 체제를 선택했다.
“나를 비롯해 KB손해보험 미겔 리베라 감독(스페인),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핀란드), OK저축은행 오기노 마사지 감독(일본), 현대캐피탈 필립 블랑 감독(프랑스) 모두 각자 색깔을 담은 배구를 선보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팀마다 유망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의 잠재력을 코트에 빨리 발현하는 팀이 웃을 것이다. 다만 V리그 시스템상 운이 많이 작용한다는 점이 아쉽다. 신인, 외국인선수, 아시아쿼터 자원을 선발할 때 모두 드래프트에 의존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선수들의 수준 대비 평균 연봉이 높아졌다는 인상도 받았다. 팬들의 뜨거운 열기, 한국배구연맹(KOVO)과 구단 차원의 뛰어난 마케팅, 미디어의 큰 관심, 거대한 규모의 시장 등을 갖춘 리그인만큼 더욱 성장해야 한다.”
-V리그 특성상 외국인선수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KOVO컵에서 아히를 아포짓 스파이커, 알리를 아웃사이드 히터로 기용했다. 아히의 경우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를 비롯해 독일리그와 벨기에리그를 누빈 베테랑이다. 베테랑답게 V리그 특유의 스타일을 빨리 파악해 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V리그 무대 도전이 처음인 그에게 주장 완장을 맡긴 것도 이 같은 믿음 때문이다. 반면 알리는 경험이 적은 어린 선수라 부담을 많이 주지 않으려고 한다. 다행히 KOVO컵에서 공격과 리시브 능력 모두 팀에 보탬이 됐다. 김지한과 한성정 등 걸출한 아웃사이드 히터들이 팀에 많지만, 무난하게 팀에 녹아들 것으로 기대한다.”
-결국 새 시즌 목표는 우승인 것 같다.
“우승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카드를 더 좋은 팀으로 만들 수 있다고 약속한다. 좋은 팀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확실한 철학을 주입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잘 설명하고 자신감을 불어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2~3개월간 호흡을 맞추면서 원하는 것을 다 얻진 못했지만, 우리가 굉장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인천|권재민 기자 jmart220@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