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서 골프를 즐기다 - 피닉스오픈 관전기 [윤영호의 ‘골프, 시선의 확장’] <30>

입력 2025-02-11 17: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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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골프투어 WM 피닉스오픈이 열린 지난 6일 TPC 스코츠데일의 16번 홀 주변에 설치된 관중석에서 수많은 관중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16번 홀의 관중석은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시킨다. 애리조나(미국) ㅣ AP 뉴시스

미국프로골프투어 WM 피닉스오픈이 열린 지난 6일 TPC 스코츠데일의 16번 홀 주변에 설치된 관중석에서 수많은 관중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16번 홀의 관중석은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시킨다. 애리조나(미국) ㅣ AP 뉴시스



PGA 투어 WM 피닉스 오픈 둘째 날 경기가 벌어진 미국 애리조나의 TPC 스코츠데일 스타디움 코스의 16번 홀에서 에밀리아노 그리요(32·아르헨티나)가 친 샷이 155야드(142M)를 정확히 날아가 홀컵에 빨려 들어갔다. 대부분의 덩크슛 홀인원이 홀컵 가장자리를 뭉개고 들어가지만, 그리요의 공은 홀컵 가장자리와 깃대 사이의 공간을 저항 없이 비집고 들어갔다. 바운스가 된 공은 홀컵을 튕겨 나오려고 했지만, 깃대에 부딪힌 후에 홀컵 가장자리를 다섯 바퀴 돌고 다시 홀컵으로 가라앉았다. 지금까지 본 홀인원 중에 가장 인상적인 홀인원이었다.

그 홀인원이 콜로세움으로 불리는 16번 홀에서 이뤄진 것이 더욱 특별했다. 16번 홀은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람석으로 빙 둘러싸여 있고, 관중은 좋은 샷에 환호를, 나쁜 샷에 야유를 보낸다. 이 홀은 관중석 구조와 응원 문화가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을 닮았다.

그리요의 덩크슛 홀인원이 일어나자, 관중들은 열광적 환호와 함께 그린과 티샷 박스에 맥주잔과 물병을 집어 던졌고, 광기가 16번 홀을 지배했다. 경기 진행 중에 쏟아진 쓰레기 더미로 경기는 10분 이상 지연되었지만,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대회 스폰서가 쓰레기 처리 전문회사인 WM이기 때문이다.
미국 애리조나의 TPC 스코츠데일 스타디움 코스의 16번 홀에서 에밀리아노 그리요가 친 샷이 155야드를 정확히 날아가 홀컵에 빨려 들어갔다.  사진출처 ㅣ 인스타그램

미국 애리조나의 TPC 스코츠데일 스타디움 코스의 16번 홀에서 에밀리아노 그리요가 친 샷이 155야드를 정확히 날아가 홀컵에 빨려 들어갔다. 사진출처 ㅣ 인스타그램


WM(Waste Management의 약자)은 미국 전역에서 쓰레기를 모으고, 분리하며 재활용하고, 쓰레기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이용하여 발전을 하는 회사다. 쓰레기 처리만으로 1년 매출 30조 원, 영업이익 5조4000억 원을 달성하는 대기업이다.

WM 피닉스 오픈(총상금 920만 달러)은 20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시그니처 대회인 AT&T 페블비치 프로암과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에 끼인 작은 대회처럼 보이지만, 93년 전에 시작한 대회로 PGA 투어 대회 중에 여섯 번째로 오래된 대회이자, 가장 많은 관중이 입장하는 대회로 유명하다. 올해에는 닷새에 걸쳐 61만8365명이 관객이 대회장을 찾았다.

그리요의 덩크슛 홀인원은 골프 코스를 찾은 골프 팬에게 더 없는 즐거움을 주었다. 골프에서 홀인원보다 극적인 장면은 없지만, 문제는 홀인원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홀인원 확률은 아마추어 골퍼의 경우에 1만2500분의 1, 프로 골퍼의 경우에 3000분의 1로 추정된다.

타이거 우즈는 28년간 PGA투어를 뛰면서 WM 피닉스오픈 16번 홀을 포함해 3번 홀인원을 했다. 28년간 활동하면서 8년은 부상과 여러 이유로 많이 뛰지 못했으니 20년간 매년 20개 대회를 소화했다고 가정하면, 1500번 정도 라운드를 했다. 한 라운드에 4번의 파3가 있다고 하면, 6000번의 파3에서 홀인원을 3번 했으니, 그의 홀인원 확률은 2000분의 1이다.



로리 매킬로이는 17년간 비교적 부상 없이 뛰어서 총 1200번 정도 라운드를 했다고 가정하면, 파3를 4800번 플레이하면서 2번 홀인원을 했다. 그의 홀인원 확률은 2400분의 1이다. 그중 한 번은 지난주 AT&T 페블비치 프로암에서 한 슬램덩크 홀인원이었다.

2019년 148회 디오픈 로열 포트러시 13번 홀에서 홀인원을 한 적이 있는 무리요는 홀인원 공을 콜로세움의 관중석으로 던져 주었다. 선수들은 홀인원 한 공으로 패를 만들어 보관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콜로세움 홀의 열광적인 관중들을 위해 일부 선수들은 선물을 준비해 와서 관중석에 던져 주기도 했다. 어떤 선수는 자신의 좋아하는 스포츠 구단 유니폼을, 어떤 선수는 자신의 사인공을, 어떤 선수는 20달러짜리 지폐를 구겨서 던져주기도 했다.

토마스 데트리(벨기에)가 9일(현지 시간) 미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TPC 스코츠데일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WM) 피닉스 오픈 정상에 올라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트리는 최종 합계 24언더파 260타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스코츠데일(미국) ㅣAP 뉴시스

토마스 데트리(벨기에)가 9일(현지 시간) 미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TPC 스코츠데일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WM) 피닉스 오픈 정상에 올라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트리는 최종 합계 24언더파 260타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스코츠데일(미국) ㅣAP 뉴시스


상금 면에서 작은 대회지만, PGA투어 대회로서 결코 비중이 작지 않은 이번 대회의 우승은 23언더파로 2위를 무려 7타 차이로 따돌린 토마스 데트리(32·벨기에)에게 돌아갔다. 그는 프로 데뷔 9년 만에 정규 대회 첫 승을 달성했고, 벨기에 선수로는 처음으로 PGA 대회를 우승했다. 오랫동안 우승이 없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는 놀랍도록 정확하고 실수가 없었다. 72개 홀 중 62번이나 정규 온(Green in Regulation)에 도달하여 GIR(플레이어가 정규 타수 이내에 공을 그린에 올리는 것)에서 1위를 기록했고, 퍼팅 정확도에서도 참가 선수 중 2번째로 좋은 성적을 보였다. 

다음 대회는 우리나라 자동차 브랜드 제네시스가 후원하고 타이거 우즈가 주최하는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이다.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날에도 WM 피닉스 오픈 같은 독특한 전통이 생기길 바란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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