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하지 말고 모두 철수!”
9일 대구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롯데-삼성전이 비로 취소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날 구장에 도착한 롯데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특별한 훈련 없이 스트레칭만 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이날 대구에는 더도 덜도 아닌, 경기를 강행하기 어려울 만큼만 비가 내렸다. 그렇다고 폭우 수준은 아니었다. 홈팀인 삼성 선수들은 경기 시작 2시간 전쯤 취소 결정이 내려졌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비를 맞으며 타격훈련을 모두 마쳤다.
국내 다른 팀들도 대부분 폭우가 아닌 이상 경기가 취소되더라도 그라운드에서 훈련을 한 뒤 숙소로 돌아간다. 원정팀도 마찬가지다. 고교나 대학의 야구장을 구해 훈련을 하기도 한다. 폭우가 쏟아지면 원정팀 선수들은 숙소 지하 주차장 등에서 스윙을 하거나 피칭훈련을 한다. 감각을 잃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롯데는 이날 대구구장에서 뿐만 아니라 숙소에서도 훈련이 전혀 없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사진)이 선수단에 그렇게 지시했기 때문이다. 롯데는 로이스터가 감독으로 부임한 뒤 훈련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전지훈련 때도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처럼 오전 훈련만 집중적으로 한 뒤 해산했다. 비가 오거나 기온이 떨어지면 로이스터는 “선수들이 부상을 당할 수 있다”며 훈련을 취소했다. 그리고는 선수들에게 자유시간을 줬다.
스프링캠프에서 아침 눈 뜰 때부터 야간훈련까지 하는 국내 프로야구 풍토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롯데 선수들은 당시 “훈련이 너무 적은 것 아닌가”라며 오히려 오후에 따로 슬그머니 나가 개인훈련을 했을 정도다.
롯데 선수들이나 코치들은 이날도 “대구구장은 물론 숙소에서도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로이스터 감독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총총히 버스에 올라탔다.
스프링캠프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규시즌에도 우천취소시 훈련을 하지 않는다? 롯데 선수단은 몸에 익은 습관과 편견이 부서지는 느낌일 수밖에 없었다.
롯데 주장 정수근은 “캠프 때도 훈련이 끝나면 로이스터 감독님은 개인이 알아서 쉬라고 말씀하셨다. 술을 마시든, 잠을 자든 프로선수인데 감독이 뭘 간섭하느냐고 하시더라. 그러다보니 오히려 선수들이 스스로 몸관리하는 법을 생각했다. 이것이 프로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거의 사라진 풍경이지만 국내 프로팀 지도자들은 과거 원정경기 때면 숙소에서 불침번을 서기도 했다. 심지어 감독이 호텔 로비에 버티고 앉아 있기도 했다. 선수들이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 경기를 그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늬만 프로지 자신의 몸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선수들이 많았던 탓도 크다.
비오는 날에도 훈련을 하는 한국적 훈련방식이 좋은지, 아니면 휴식을 취하며 부상예방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훈련을 적게 하고도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로이스터의 지도 방식이어서 이날 롯데 선수단의 훈련 취소는 색달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롯데 선수단에는 점점 ‘자율’과 ‘책임’이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대구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