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최나연지은희등2%부족…통역자쓰는중고참선수‘죽을맛’
LPGA가 ‘영어 사용 의무화’라는 규제로 한국 선수들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나서 태극 낭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그 놈의 영어 때문이다. 한국 낭자들의 영어 실력은 천차만별이다.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주니어 시절부터 영어 공부에 전념한 선수들은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몇 년씩 고생한다. 일찍부터 LPGA를 목표로 선수생활을 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교에는 못 가더라도 영어 공부는 해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특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박세리-한희원-장정 수준급 ‘느긋’
지난 3일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신지애는 시상식장에서 당당히 영어로 소감을 밝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말문이 막히지 않고 자신의 소감을 또박또박 말하는 신지애의 모습에서 준비된 ‘여왕’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신지애는 골프 연습뿐만 아니라 하루에 2시간씩 영어 공부를 병행했다.
한국 선수들이 LPGA투어에 진출한지 10년이 넘었다. 1세대인 박세리와 김미현, 한희원, 장정 등은 현지인 수준의 영어 구사가 가능하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박지은, 박인비 등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박희정 처럼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골프를 배운 선수들도 의사소통이 원활하다.
○최나연-지은희-박희영 서툴러 ‘초조’
문제는 미국에 진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들과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미국으로 떠난 선수들이다. 올 초 미국으로 건너간 최나연, 지은희, 박희영, 오지영 등은 아직 영어가 서툴다. 투어에서 생활하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LPGA가 요구하는 수준은 아니다.
올해 웨스먼스 LPGA에서 우승한 지은희의 아버지 지영기 씨는 “어지간한 선수들은 영어로 일상적인 대화는 하는 데 문제가 없다. 대부분 외국인 캐디를 고용하고 있는데 의사소통이 원활하다. 다만 현지 분위기 적응이 되지 않은 탓에 실수를 줄이기 위해 영어 인터뷰 등을 자제했는데 이제는 좀더 영어 공부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담담해 했다.
○통역 고용하는 중고참 선수 ‘답답’
가장 답답한 건 중고참 선수들이다. LPGA투어에 진출한 지 5년이 넘은 K, J 등은 아직도 영어 구사 능력이 떨어져 인터뷰 때 통역을 이용한다. LPGA투어에 워낙 많은 한국 선수들이 진출해 있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영어 공부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LPGA투어가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선 스폰서를 구해야 한다. 미국 선수들의 경우 인터뷰 등에서 스폰서에 대한 고마움의 뜻을 표하는데 반해, 비 미국계 선수들은 이런 언급을 잘 하지 않아 스폰서들의 불만이 커졌다. 스폰서의 눈치를 봐야하는 협회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고마움을 표시하는 미국 선수들이 더 예쁘게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다.
LPGA는 “이번 조치가 한국 선수들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비 미국계 선수 모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121명의 선수 가운데 한국 선수가 무려 45명이나 돼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투어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은 골프와 함께 영어 공부까지 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게 됐다. 지영기 씨는 “영어 구술 평가를 내년 말 정도에 치른다고 한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 열심히 영어를 배우면 불합리한 규제를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애써 초조함을 감췄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