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이청용,대표팀두영건의톡톡튀는사고방식

입력 2008-11-20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장면 1 “안 가? 형들 다 갔어.” 이어폰을 꽂은 채 PMP를 보며 영화 삼매경에 빠져있는 기성용(19)의 어깨를 이청용(20·이상 서울)이 툭 친다. “벌써? 지금가면 어차피 줄서서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기성용이 좀 더 영화를 보고 싶다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으며 자신을 쳐다보자 이청용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슬쩍 옆에 앉더니 기성용의 오른쪽 귀에서 이어폰 하나를 빼 자신의 왼쪽 귀에 꽂은 뒤 기성용 손에 들려있는 PMP 화면을 응시한다. 나란히 앉아 평화롭게 영화를 보고 있는 둘의 모습에서 사우디와의 격전을 앞둔 긴장감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장면 2 스트레칭과 러닝으로 가볍게 몸을 푼 뒤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2명씩 짝을 지어 패스 연습을 하는 시간. 짧은 거리에서 먼 거리로, 인사이드 패스에서 롱 패스로.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볼의 세기도 점차 강해지지만 볼은 기성용의 발에 척척 달라붙는다. 기성용이 멀리서 차준 볼을 이번에는 이청용이 오른발을 왼발 뒤로 넣어 받아낸다. 이에 질세라 기성용은 등 뒤로 넘어오는 볼을 보지도 않고 발 등에 사뿐히 얹어놓는다. 묘기에 가까운 볼 키핑이다. #장면 3 한국의 공격 찬스. 이청용이 한 번 출렁이는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고 오른쪽 코너 부근에서 정확하게 크로스를 올리자 페널티 아크 정면에 있던 기성용이 이를 받아 환상적인 왼발 발리슛을 날린다. 볼을 상대 골문 오른쪽을 정확하게 꿰뚫는다. #장면 1은 대표팀 선수단이 카타르 도하 국제공항에서 사우디로 향하기 직전 출국장에서의 모습이고, #장면 2는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대표팀의 패스 연습이며, #장면 3은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이청용과 기성용이 한 골을 합작하는 장면이다. ○한국축구 세대교체 신호탄 기성용과 이청용의 등장은 한국 축구 세대교체의 신호탄이다. 기성용은 9월 5일 요르단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가진 후 9월 10일 북한과의 2010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에서 극적인 동점골로 데뷔 골을 터뜨렸다. 이청용은 이보다 앞선 5월 31일 요르단과의 월드컵 3차 예선에서 A매치에 처음 출전, 9월 5일 요르단과의 친선경기에서 데뷔 골을 성공시켰다. 아직 20세에 불과한 나이지만 둘은 이미 대표팀의 주역이다. 기성용은 김남일(빗셀 고베), 김두현(웨스트브롬위치)을 따돌리고 대표팀에 승선해 주전 자리를 꿰찼고, 이청용은 설기현(풀럼), 염기훈(울산), 이천수(수원) 등 쟁쟁한 선배들과의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한국이 2010남아공월드컵에 진출하게 되면 기성용과 이청용은 대표팀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배들과 다른 생각, 행동, 꿈 함께 볼을 차고 그라운드를 누비지만 이들의 생각이나 행동, 꿈들은 기존 대표팀 선배들과 사뭇 다르다. ‘오늘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현해탄을 건너올 생각도 하지마라’는 어느 대통령의 말은 이들에게는 그저 책 속에 나오는 소설 같은 이야기일 뿐. 기성용은 “축구는 재밌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청용은 “오늘 한 번 즐겁게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경기장에 간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패배에 무심한 건 결코 아니다. 일단 그라운드에만 들어서면 모든 것을 잊은 채 승리에 ‘올인’한다. 선배들과의 몸싸움에도 악착같고 볼을 뺏기면 무섭게 다시 달려드는 것을 보면 훈련 시작 전의 천진난만하고 순둥이 같은 모습이 도저히 연상되지 않는다. ○체계적인 유소년 프로그램 이청용은 도봉중 3학년 때 자퇴서를 쓰고 고교 진학 대신 FC서울 입단을 택했다. 학벌 지상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FC서울의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을 믿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기성용은 중학교 1학년부터 고교 2학년 때까지 호주에서 유학하며 축구와 영어 공부를 병행했다. ‘일단 많이 뛰고’ ‘혼자 잘난 척(드리블)하지 말고’ ‘골을 넣지는 못해도 절대 내줘서는 안 되는’ 국내 학원축구 시스템 안에서 키워진 선배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셈이다. 그래서 이들은 그라운드에서 힐끗 힐끗 감독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게 일대일 돌파를 즐긴다. 한국 선수들에게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안정된 기본기와 유연한 발놀림, 힘보다는 정확한 임팩트에 의한 강력한 슛 등은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왔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인터뷰도 솔직하게 “죽을 각오로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 하겠다”는 엄숙한 출사표는 이들에게서 좀처럼 들어볼 수 없다. 기자들 앞에서 말을 한껏 ‘포장’하는 모습도 보기 힘들다.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그거요? 잘 모르는데요”라고 솔직하게 답하고, 경기를 앞두고는 “솔직히 이길 자신 있다. 상대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과감하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리야드|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이청용 ▲생년월일=1988년9월2일▲신체조건=180cm/60kg▲출신교=도봉중▲프로데뷔=2004년▲K리그 출전 기록=50경기 9골13도움▲A매치 출전기록=7경기 2골▲대표 경력=2007년 FIFA 20세이하 월드컵 대표, 2008년 올림픽대표, 2008년 월드컵 대표 기성용 ▲생년월일=1989년1월24일▲신체조건=186cm/75kg▲출신교=금호고▲프로데뷔=2006년▲K리그 출전 기록=46경기 4골1도움▲A매치 출전 기록=5경기 2골▲대표 경력=2007년 FIFA 20세이하 월드컵 대표, 2008년 올림픽대표, 2008년 월드컵 대표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