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의 한해 농사를 결산하는 포스트시즌이 시작됐습니다. 베이징올림픽 예선 탈락이나 대표팀의 실망스러운 경기 내용 때문에 K리그도 유탄을 맞은 한해였는데요. ‘축구장에 물을 채워 수영장을 만들자’는 비아냥에 시달렸으니 말 다한 것 아닙니까. 그래도 정규리그 막판 흥미진진했던 순위 경쟁이나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이 이끄는 대표팀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통쾌하게 물리치면서 팬들의 관심이 다시 쏠리는 느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인들이 할일은 무엇일까요. 질 높은 플레이로 보답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루 이틀 장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팬들에게 ‘K리그는 재미있다’는 믿음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믿음이 깨진 곳이 바로 PO 그라운드 입니다. 포스트시즌만 되면 주심이 파란 눈의 이방인으로 바뀌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90년대에도 간혹 외국인 주심이 휘슬을 분 적이 있지만 2002월드컵 이후 외국인 심판이 본격적으로 점령했습니다. 뭐, 공정한 경기만 치를 수 있다면 국적 가릴 필요가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원인은 따져 봐야겠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내 심판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2002년에 외국인 심판을 데려올 때는 한두 해 하다보면 우리 주심들도 많이 배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국내 심판에 대한 믿음이 커질 거라고 기대했지만 결국 오산이었습니다. 올해도 챔피언결정전까지 외국 주심이 경기를 책임집니다. K리그 심판들에게는 ‘우울한 가을잔치’인 셈이죠. 시즌 도중 끊이지 않던 판정 논란도 외국인이 맡으면 사라지는데요, 이번에도 6강 PO 2경기가 별 탈 없이 진행됐습니다. 축구인들은 “주심의 능력은 별 차이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국내 심판에게는 욕설과 함께 대들면서도 외국인에게는 거의 항의를 하지 않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일까요. 아닙니다. 편견 없이 추상같은 판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으레 정규리그 막판만 되면 “외국인 심판을 데려와야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불신의 정도가 얼마나 깊은 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제 이 불신의 계절을 접어야할 때라고 봅니다. 선수나 감독, 심판 모두 무엇이 문제인지, 왜 국내 심판이 중요한 경기에서 배제되는 지를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선수 못지 않게 국제적인 판관을 길러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남 |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