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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보도를 통해 터미널을 건너오면 바로 구시가로 이어진다. 이 지하 터널에 소매치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딱히 우범지대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던 나는 숙소를 찾는데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기에 리가의 구시가지를 일찍부터 익힐 수 있었다. 오늘 하루만 방이 비어있다는 숙소를 잡고 짐을 내려놓았다. 무언가 에스토니아보다는 빨리 돌아가는 느낌의 리가에서는 그에 따라 발을 맞춰야 할 것 같아 서둘러 나왔다. 다섯 시간 정도를 내려 왔을 뿐인데 이곳 날씨는 춥지 않다.
한국영화 베를린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모두투어 제공
리가는 오랜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도시로 다양한 건축물들의 전시장인 까닭에 리가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현대건축부터 신고전주의, 아르누보 등 다양한 건축물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리가이며 그 건물들에 갖가지 색을 입힌 리가는 그래서 ‘동유럽의 캔버스’, ‘발트의 문화 수도’라는 로맨틱하고 위엄 있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우리는 사실 라트비아를 이미 알고 있었다. 리가는 독일 태생의 작곡가 바그너에게 예술의 사상적인 동기를 부여한 도시로 유명하며 실제로 바그너는 리가에서 1837년 2년여를 살았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곡인 ‘소나무야Oh, Tanenbaum’가 바로 이곳 리가에서 작곡되었다. 미녹스 카메라가 최초로 생산된 도시이기도 하며 영화 ‘백야’의 주인공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화 학도들에게 성서와도 같은 영화 ’전함 포템킨‘을 만든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 역시 리가에서 태어났다. 마지막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번안 가요인 ’백만 송이 장미‘도 원래는 라트비아 작곡가가 만든 라트비아의 노래이다. 이렇듯 어딘지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던 라트비아의 리가. 여행에서 안전함이 아닌, 안정감은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리가 거리의 바닥은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가끔은 비죽이 나온 돌부리에 걸리기도 할 만큼. 라트비아 정부가 정책적으로 문화유산에 대한 법적 기준을 강하고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소한 돌이라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현재 리가 구시가지는 아예 ‘문화 보존 지역’으로 지정되어 새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온 유럽을 덮고 있는 그래피티에 대한 규제도 엄격해 리가에서 확실히 많이 보이지 않는다. 활기와 분주함 속에 있는 엄격과 규율. 정말이지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 아닐까. 나는 왠지 리가에 들어오면서부터 이곳이 좋아져 버렸다.
종종 탈린의 세 자매 건물과 비교되는 이 건물들은 각각 15, 16, 17세기에 한 동씩 지어졌다. 현재는 건축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모두투어 제공
이른 저녁을 먹으러 리도Lido라는 이름의 식당을 찾아 나선다. 수 십 가지의 음식 중 원하는 대로 골라먹고 그 값을 치루는 방식의 식당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음식 종류는 물론 양도 많아 리가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다녀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숙소의 스텝은 구시가지 지점보다 공원 건너편의 리도를 추천했다. 구시가지에서 바로 옆 블록을 지나면 원도심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마치 해자처럼 도심을 감싸고 있는 수로가 있고 꽃들이 만발한 공원 뒤로 오페라 극장이 있다. 한 쌍의 동성 커플은 서로의 투박한 손을 마주잡고 수로 위의 배에 오르고 있다. 리가 사람들은 확실히 탈린 사람들보다 애정 표현에 적극적이다. 때문인지 리가 곳곳에는 순수하게 노래를 한다거나 공연을 즐기는 사람이 적어도 탈린보다는 많아 보인다. 그들은 단순히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 보다는 음악 자체를 연주하러 나온 것 같다. 리가 사람들의 광장인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라트비아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 밀다Milda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자유의 여신상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라트비아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라트비아의 주권과 자유를 상징하는 조형물인 자유의 여신상은 리가 청춘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전망대에 올라 리가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요금은 9유로. 모두투어 제공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이 되어 다시 나왔다. 화약탑을 지나 카페와 상점들이 있는 리가에서 가장 긴 건물이라는 노란색 건물을 따라가면 리가 구시가지의 외곽을 도는 셈이다. 화약탑은 스웨덴의 침략으로 17세기 한차례 파괴된 적이 있다. 에스토니아와 마찬가지로 라트비아도 이민족의 침략을 꽤나 버텨낸 셈. 리가에서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검은머리전당. 134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중세시대 때 활발하게 활동했던 검은머리길드가 이 건물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해서 그런 이국적인 이름이 붙었다. 검은머리는 흑인을 가리키고 실제 전당 앞 벽에도 검은 얼굴의 인물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검은머리길드의 수호신이 아프리카 모리셔스의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올해 말까지 내부관람은 금지되어 있다. 전당 앞에는 삼인조로 구성된 팀이 연주를 하고 있다. 작은 오르간과 호른 그리고 트럼펫으로 구성된 트리오는 오로지 밝고 신나는 곡으로만 연주한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사람들은 이 한가로운 저녁시간에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들을 만끽하고 있고 주변은 어느 순간 사람들로 메워지고 있다. 트리오는 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듯 서로 리드와 리듬을 번갈아 바꾸어가면서 곡 자체를 즐기고 있다. 그때,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춤을 춘다. 길을 가던 두 여성이 춤을 추기 시작하자 뒤따라가던 사람들과 앉아있던 사람들도 일어나 그 즉흥 무대에 기꺼이 오른다. 저녁 시간이 주는 그리고 음악이 주는 평화를 즐기는 사람들. 사람들은 여행자가 아니어도 좋고 그래도 좋다. 여기는 지금 라트비아의 리가. 그리고 음악이 흐르는 검은머리전당 앞.
거의 매일 연주회나 공연이 열린다.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정보를 알고 가면 좋다. 모두투어 제공
숙소를 옮겼다. 이상하게 성수기가 지났음에도 구시가지 쪽에는 방이 없었고 숙소 가격만큼은 리가가 에스토니아보다 비쌌다. 어제 봐두었던 곳은 버스터미널 뒤편과 기차역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있는 시장 옆에 있는 숙소였다. 어째서 뉴욕의 브루클린 분위기가 가득한 그곳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이미 다급한 마음에 돈을 주어버렸다. 프런트에 있는 러시아 처자에게 이 주변이 위험하지는 않은가, 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했었다. 그녀의 대답은 물론 위험하다, 였다.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기 때문이다. 가장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장이라는 곳에서 위험 운운을 한 나는 아직 어리다. 여행자들과 거리가 있는 곳. 진짜 리가 사람들이 러시아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리가의 한 가운데. 나의 안정감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리가 시장은 일곱 시에 문을 연다. 닫는 시간도 비교적 이른 시간인 여섯 시.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던 이곳은 전쟁 때는 은폐가 가능한 특유의 모양으로 독일의 비행기 격납고로 활용되었다. 각각 네 동은 서로 다른 품목들을 취급해 상인들의 혼선을 피하는 것 같아 보인다. 동 별로 육류와 생선, 생필품과 채소 그리고 유제품, 과일 등등으로 정확히 분류되어 있고 국내 모 책자에 소개된 ‘죽기 전에 꼭 봐야할 건축 1001’에 선정되기도 했을 정도로 시장으로서는 규모 자체가 웅장하다. 물론 가격 자체도 무척 저렴하다. 라트비아 사람들의 음식, 리가 사람들의 웃음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을 보려면 리가 중앙시장은 그 어떤 곳보다도 중요한 방문지이다.
TEVZEMEI UN BRINIVAI / For the Fatherland and Freedom / 조국과 자유를 위하여. 모두투어 제공
지하보도를 건너 구시가지의 성 베드로 교회로 향한다. 여행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벗어나고 보니 마치 리가 사람들처럼 내 발걸음은 하루 만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1209년에 처음 지을 때는 목재를 사용했다가 이후에 다시 돌로 증축한 리가의 대표적인 교회이다. 입구 정면에는 전쟁 때 목이 잘려나간 동상이 그대로 서 있다. 뒤편에는 브레멘 음악단 동상이 있다. 나름 리가에 유명한 스폿이지만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이 그렇듯 무척 크거나 어떤 역사적인 사실이 있는 곳은 아니다. 당나귀의 코를 만지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과 농담의 중간에 있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연신 이 동물동상의 코를 만지고 심지어 가장 높은 수탉에게까지 뛰어서 닫곤 한다.
숙소로 돌아와 발트의 바다를 보러가기로 했다. 조금은 서늘하고 끝없이 멀게 느껴지는 발트. 어쩌면 내가 이곳으로 오기 위해 제일먼저 머릿속에 그려 넣었던 것은 바로 그 이름, 발트해였다.
발잠Balsam
오렌지 껍질과 떡갈나무, 주스와 약초 등 24가지 재료를 넣고 한약처럼 끓여 만든 라트비아의 전통주로 라트비아 인들은 술보다는 약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감기에 걸렸을 경우나 배가 아픈 경우에도 특효약이라고 믿고 있다.
제공 : 모두투어(www.modetour.com, 1544-5252), TRAVEL MAGAZINE GO ON
라트비아의 린넨은 유럽에서도 가장 좋은 품질로 손꼽힌다. 모두투어 제공
<동아닷컴>
<발트 3국 공통 팁>
환전
3국 공히 유로를 쓴다. 현지 환전율이 그다지 좋지 않다. 많은 숙소와 식당에서 카드를 받으므로 카드와 현금을 적절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언어
발트 3국의 언어는 모두 다르며 인접국이지만 특히 에스토니아의 언어는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언어와는 본질적으로 완전하게 다르다. 영어가 잘 통하지만 러시아어를 할 수 있다면 라트비아에서는 좀 더 편하게 여행 할 수 있다.
전압
한국과 같다. 220v 동일.
발트 내의 국경 넘기
버스로 국경을 넘을 때는 특별한 검사를 하지 않는다. 개인별 이동시 불시에 검문이 있을 수 있다.
버스 이동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세 나라는 서로 이웃하고 있으며 나라 자체가 크지 않아 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에서 리가까지는 다섯 시간, 다시 빌뉴스까지는 대략 네 시간 정도가 걸린다. 버스티켓은 각 나라의 버스터미널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국가 간의 이동 티켓은 일반 창구에서 팔지 않고 룩스나 에코라인 같은 개인 버스 회사의 별도 부스에서 판매한다. 버스표는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과 현장 구매 모두 가능하며 버스 탑승 전 여권 검사를 하기 때문에 여권 지참은 필수. 버스 내부에서 인터넷이 가능하다.
에코라인 http://ecolines.net/en/
룩스 http://www.luxexpress.eu/en
기차 이동
전 유럽을 커버하는 유레일패스는 불행하게도 발트 국가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 등에서 기차로 입국이 가능하나, 라트비아의 경우 벨로루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벨로루시 비자가 따로 필요하다. 기차로의 입국은 비 추천.
선박 이동
핀란드에서 에스토니아로 오는 것이 가장 저렴하고 편수도 많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보다 물가가 싸기 때문에 돌아가는 배편은 생필품과 맥주 등의 주류를 사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치안
표현을 잘 하는 민족은 아니지만 러시아나 폴란드보다 훨씬 밝은 분위기라 치안 문제는 다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야간 시간의 도심 활보는 주의할 것.
인터넷
발트의 인터넷 사정은 꽤 좋다. 전 세계적인 인터넷전화로 유명한 스카이프를 처음 발명한 곳도 에스토니아이다. 숙소와 레스토랑, 터미널 등지에서 쉽게 와이파이에 연결된다.
비자
발트 3국 모두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 90일 무비자로 여행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