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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에서는 더 이상 이룰 게 없다. 지금은 영화에 집중하고 있다.”
‘피겨 전설’ 알렉세이 야구딘(32·러시아)은 영화인으로 거듭나는 것일까,
25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특설링크 옆 인터뷰장에서 야구딘을 만났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 4회 우승, 유럽선수권 3회 우승, 국제빙상연맹(ISU)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2회 등 화려한 커리어가 야구딘을 수식한다. 2002년 유럽선수권과 그랑프리 파이널,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모두 한 시즌에 제패하며 남자 피겨 싱글 최초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야구딘은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다.
야구딘은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했다. 기자회견 당시 데이비드 윌슨(46)과 박장대소를 하며 웃던 모습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그는 평소의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젠 빙판 위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다 이뤘다. 아이스쇼에 출연하는 선수들은 100% 피겨에 집중하는 선수들이지만, 내게 피겨는 나를 발전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새로운 캐릭터를 연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야구딘은 연예 분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야구딘은 한때 브라이언 쥬베르(28·프랑스)의 코치를 맡은 적도 있지만 이날 취재진과의 만남에서 “피겨는 이제 내겐 과거”라고 선언했다. 아이스쇼를 제외하면 피겨에서는 손을 떼겠다고 밝힌 셈이다.
“지금은 영화에 도전하고 있다. 예전에 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고. 지금 내 직업은 연기자다. 그런 부분에서의 표현력을 좀더 발전시키고 싶다.”
과거 피겨 리얼리티 TV쇼 ‘아이스 에이지’에 나섰던 야구딘은 최근 발레 리얼리티 TV쇼에도 출연했다. 피겨와 발레는 아름다움을 다룬다는 점에서 언뜻 비슷해보이는데다, 한 분야의 정점에 올랐던 선수의 출연인 만큼 화제가 됐다. 하지만 야구딘은 “둘은 전혀 다른 분야”라고 딱 잘라 말했다.
“방송 내내 가장 집중했던 부분이 발레를 피겨처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발레 댄서의 무대는 플로어이기 때문이다. 발레를 할 때는 클래식으로 현대적인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반대로 피겨를 할 때는 싱글 스케이터인 내가 페어를 이뤄 리프트를 시도했던 기억이 난다."
야구딘은 2009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피겨 페어 부문 금메달리스트인 타티아나 토트미아니나(31·러시아)와 결혼해 딸 리자(3)를 얻었다. 리자로선 피겨 선수로 성장하기엔 더할나위없는 배경을 갖춘 셈. 딸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한결 밝아진 야구딘은 ‘딸이 피겨를 하겠다면?’이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권하지 않겠다(negative)"라고 답했다.
“피겨는 성격을 개발하거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 도움이 된다. 건강에도 좋다. 하지만 어떤 경계(border)을 넘어서면 전혀 다른 스포츠가 된다. 많은 부상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피겨를) 하고 싶어하면 막진 않겠지만, 내 딸은 피겨보다는 공부를 열심히 하길 바란다. 운동선수는 수백만 명 중 1-2명만이 승리자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은 어디서든 자기 몫을 할 수 있다.”
야구딘은 2003년 선수 시절 내내 그를 괴롭혔던 고관절 부상이 악화되며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4회전 점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예브게니 플루쉔코(30)과 자웅을 겨뤘던 그에게 이 같은 몸의 이상은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세금'이었다. 그는 2007년 인공 고관절 교체 수술을 받는 등 많은 고생을 하면서도 아이스쇼를 통해 꾸준히 팬들을 만나고 있다. 야구딘은 이번 ‘올댓스케이트 서머 2012’에서도 전성기의 기막힌 점프 대신 연극적이고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올림픽공원|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