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연기자들의 드라마 중복 출연이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일부 연기자들이 배역을 독식하는 ‘독과점’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비판까지 등장했다.
한 연기자가 동시에 두 드라마에 출연하는 경우는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많은 논란이 됐으나 이제는 일상화된 모습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같은 시간대에 편성된 드라마에 연이어 비슷한 역할로 출연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서로 다른 드라마에 두 연기자가 동시에 부부로 등장하기도 한다.
현재 MBC 월화극 ‘에덴의 동쪽’에 출연 중인 이미숙의 경우, 이 드라마가 종영하면 곧바로 SBS 새 월화극 ‘자명고’로 자리를 옮긴다.
채널만 달라졌을 뿐, 시청자는 1년 내내 같은 시간대에 이미숙을 드라마에서 만나는 셈이다. 그나마 이미숙은 억척스러운 어머니 모습에서 표독한 요부로 캐릭터의 색깔을 바꿔 변화를 시도한다.
이 시대 아버지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장용도 마찬가지. 그는 KBS 1TV 일일극 ‘너는 내 운명’에서 주인공 아버지로 출연했고, 그 후속작인 ‘집으로 가는 길’에서 또 다시 같은 역할로 나서고 있다. 오랜만에 TV를 보는 시청자라면 다른 두 편의 드라마를 같은 작품으로 착각할 만한 상황이다.
최상훈과 이미영은 70∼80년대 드라마에서나 벌어질 법한 상황을 겪고 있다. KBS 1TV 아침 드라마 ‘청춘예찬’에서 부부로 출연하는 두 사람은 오후 8시30분대에 방송하는 MBC 일일극 ‘사랑해 울지마’에도 역시 부부로 등장한다.
심지어 두 작품에서 이들이 연기하는 부부의 모습도 마치 베껴놓은 것처럼 비슷하다. 모두 최상훈은 인지한 아버지로, 이미영은 자식을 향한 과도한 욕심을 지닌 어머니로 나온다.
중견 연기자들의 중복 출연은 오래전부터 지적됐던 드라마의 관행. 하지만 지금처럼 몇몇 연기자들이 역할을 독점하는 현상이 벌어진 건 최근의 일이다.
박근형, 김해숙, 김혜옥 등 활발히 활동하는 중견 배우들도 현재 드라마 2∼3편에 동시 출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작 관계자들은 “드라마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함께 축소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드라마 외주제작사 대표는 “미니시리즈 등에서 부모세대가 등장하는 횟수가 현격히 줄어들면서 중견 연기자들이 출연할 무대는 일일극 등 연속극으로 한정됐다”며 “자연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중년 스타만 찾다보니 소수의 연기자에 몰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