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읽어주는남자]징계vs휴직…‘쎈돌’은어디로?

입력 2009-06-05 15: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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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계가 랭킹1위 ‘이세돌’로 요동을 치고 있다.

한국기원(이사장 허동수)과 이세돌이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프로기사들 역시 이세돌 옹호파와 징계파로 나뉘어 제각기 목청을 돋우고 있다. 마치 핵폭탄이 바둑판 한 가운데로 떨어진 것만 같다.

지난 달 26일 프로기사회는 총회를 소집해 이세돌을 놓고 표결을 붙였다. 그 결과 ‘이세돌의 돌출행위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에 찬성 86표, 반대 37표, 기권 2표가 나왔고, 공은 ‘징계권’을 갖고 있는 이사회로 넘어갔다. 7월 2일로 예정된 이사회의 분위기는 강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사총회의 표결이 이사회의 사전 여론조사 성격이 짙은 만큼 이세돌에 대한 징계는 수위가 문제일 뿐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기사총회 후 며칠 뒤 이세돌이 ‘휴직’이라는 초강경수를 들고 나오면서 뜨거운 감자는 마침내 오븐 안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이9단의 친형이자 프로기사인 이상훈 7단은 “동생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 대국을 계속할 상황이 못 돼 휴직을 결심했다”면서도 “기사총회 소식을 접하고 동생이 크게 상심했다”고 말해 휴직 결정 배경에 총회의 표결 결과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암시했다.

이세돌의 휴직이 받아들여질 경우 그는 2011년이나 되어야 바둑계로 돌아오게 된다. 1인자의 휴직은 한중일 바둑사를 깡그리 뒤져봐도 초유의 사건이다. 당연히 중국과 일본 바둑계도 이번 일을 예의 주시하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세돌의 유일한 라이벌 구리 9단조차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이세돌의 휴직이 국내 바둑계에 미칠 영향은 당연히 크다.

당장 국수전부터 난리다. 도전기제로 결승전이 벌어지는 국수전에서 이세돌이 빠지게 되면, 올해 국수전은 도전자는 있되 챔피언이 없는 파행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이세돌이 본선에 올라 있는 명인전, 천원전, GS칼텍스배, 한국물가정보배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한국기원과 이세돌이 서로 한 발씩 양보하고 악수를 나누는 아름다운 광경은 정녕 기대할 수 없는 걸까. 한국기원 한상렬 사무총장은 이9단의 휴직에 대해 “휴직과 징계는 별개의 사안이다. 휴직이 좋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쩐지 이 말이 “학교를 조퇴한다고 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용히 매 맞을 준비나 해라”고 들리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그런데 한 가지. 이세돌 징계 사유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이9단의 한국바둑리그 불참 선언이었다. 한국기원은 앞서 모든 기사에게 통지서를 보내 불참할 경우 4월 20일 오전 11시까지 사무국에 알려달라고 했다. 이9단은 이날 마감시간을 어긴 오후 6시께 한국기원에 자신의 불참소식을 통보했다. 한국기원은 이 점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기원이 마감일에 4일 앞선 4월 16일 각 팀 관계자를 모아놓고 보호선수와 자율지명선수 선발식을 가졌다는 점이다. 불참을 고민하고 있던 이세돌은 이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안태평천일염팀 선수로 발탁됐다. 과연 어느 쪽이 더 문제란 말인가?
이 험난한 바둑의 끝내기는 허동수 이사장에게 맡겨졌다.

한국기원과 프로기사, 바둑팬, 그리고 이세돌 본인 스스로도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사무총장의 발언이 곧 이사장의 뜻은 아니었으리라 믿고 싶다. 중요한 끝내기 순간에 제발 공배를 메우는 일만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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