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무. 조. 감. 독. 이. 현. 정’
‘배우 이현정(35)씨와 동명이인가보다’싶었지만, 아무래도 확인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해 조사해보니 과연 기자가 아는 이현정씨였다.
올해 최고의 히트작 ‘광화문연가’에 출연했던 뮤지컬배우 이현정.
작년 ‘코러스라인’에서 ‘캐시’를 맡아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던 배우.
- 아니, 배우는 어쩌시고 안무조감독이 되셨답니까. 이제 배우 안 하시려고요?
“설마요. 스태프 참여는 처음이에요. 배우하면서 댄스캡틴(앙상블배우 중 나이가 많거나, 춤을 잘 추는 배우가 주로 맡는다)을 한 적은 있지만. 한 번 해보니까,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무대 배우로서 욕심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이현정씨와는 서울 대학로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배우들이 즐겨 찾는 대학로 숨은 명소 중의 한 곳이다. 기자도 종종 배우, 스태프들과 술을 마실 때 애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인터뷰 날을 잡아 이현정씨를 초청했다.
“코요테어글리에는 친한 동료, 후배들이 많이 출연해요. 하필이면! 무대에 선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처음에 런(처음부터 끝까지 실제처럼 하는 연습)을 가는데 눈물이 울컥하더라고요. 배우들이 제가 짠 안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이 느낌은 뭐지?’ 싶었죠. 지금도 이 정도니, 나중에 정식 안무자가 되면 장난이 아니겠다 싶더라고요.”
옛날이야기로 리와인드. 데뷔 때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데뷔가 늦었죠. 제대로 된 데뷔가 2007년 ‘노틀담 드 파리’였거든요(무려 31세였다!)”
사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뮤지컬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한국무용으로 시작된 춤꾼 인생은 현대무용, 발레로 이어졌고, 대학에서도 무용을 전공했다. 이씨는 “탭댄스 빼고 다 춰 본 것 같다”라고 했다.
뮤지컬배우의 꿈을 안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이래저래 알아보던 중 우연찮은 기회에 재즈댄스팀에 들어가게 됐다. 알고 보니 아시아에서 매우 유명한 팀이었다.
‘1~2년만 있다가 뮤지컬 해야지’했는데, 1년이 되기도 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맡게 됐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았는지 꽤 재미있었다.
“그러다 보니 8년이 흐른 거죠.”
재즈댄스팀 단원이 되었어도 시선 한 구석은 늘 뮤지컬에 가 있었다. 공연을 보고 싶은데, 신입단원이라 시간이 없었다. 이씨는 “죽을 것 같았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다 보니 30대가 훌쩍 되어버린 거예요. ‘지금 이 나이에 뮤지컬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런데 ‘안 하면 죽을 것 같다’란 생각이 또 들더라고요. 스승님께 과감히 그만 두겠다고 했죠.”
처음에는 뮤지컬이라기보다는 댄스컬에 가까운 작품으로 시작했다. 춤이야 누구보다 잘 출 자신이 있었지만 문제는 노래와 연기였다. 댄스컬을 또 2년가량 했다.
“제가 한 곳에 들어가면 금방 못 나오는 성격이거든요(하하!)”
‘노트르담 드 파리’에 이어 ‘로미오와 줄리엣’을 했다. 노래와 연기없이 춤만 추는 역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또 흘렀다.
뮤지컬 배우로서 이현정씨의 진짜 데뷔는 2010년 ‘올슉업’이라고 봐야 할지 모른다.
“춤뿐 아니라 노래와 연기까지 한 첫 작품이죠. 쉽게 말해 ‘와이어리스(무선) 마이크’를 처음으로 찼으니까요. 연출님(변희석 감독이었다)한테 엄청나게 혼나고, 다 큰 나이에 울고.”
- 노래 잘 하는 배우는 인기를 얻기 쉽지만, 아무래도 춤이 전공인 배우는 손해를 보기 쉬운데요. 억울하지는 않나요.
“제가 공연을 보러 가도 솔직히 노래 잘 하는 배우에게 눈길이 가는데요 뭐. 물론 저는 춤을 추니까, ‘몸을 잘 쓰는’ 배우에게 눈이 가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일단 뮤지컬배우는 노래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노래 잘 하는 배우는 많아도 춤까지 잘 추는 배우는 많지 않죠. 두 가지를 모두 잘 하는 배우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제가 인정하는 배우는 윤공주죠. 앙상블 배우부터 꾸준히 해와서인지 기본이 튼튼해요. 춤의 느낌도 너무 좋고.”
언젠가 이씨는 윤공주(30)씨에게 “공주야, 넌 춤에 있어서는 주연배우같지 않은 실력이다”라고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남자배우 중에서는 ‘올댓재즈’, ‘사랑은비를타고’, ‘캣츠’ 등에 출연한 임춘길(42)을 쳤다.
이씨는 “남자의 경우 노래를 잘 하면서 춤도 진짜 잘 추는 배우는 잘 못 봤지만, 임춘길 배우는 예외”라고 했다.
<2부에서 계속>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