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 둘.
아직도 그를 아역배우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1987년, 만 7세의 나이에 데뷔했으니 올해로 연기 인생 25년.
“젊은 뮤지컬 배우 중에서는 그래도 제가 최다 연기경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수용 선배가 계시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렇다. 드라마 ‘간난이’의 ‘영구’로 원조 국민 아역배우의 이름을 드날린 김수용의 경우 순수 연기경력을 치면 30년쯤 된다.
장덕수는 요즘 군대생활을 소재로 한 뮤지컬 ‘스페셜레터’에 출연 중이다.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인해 군에 간 친구의 상사(김병장이다)로부터 여자로 오인받는 ‘은희’ 역이다.
‘은희’와 마찬가지로 장덕수도 군대를 늦게 갔다. 스물아홉인 2008년에 입대해 작년에 제대했다. 군기 빡세기로 소문난 군악대에서 복무했다.
- 작년 4월에 제대했으니 이제 1년 좀 넘었군요. 군대가 지긋지긋할 법도 한데, 웬 군대 뮤지컬입니까.
“군대에 있을 땐 지긋지긋했지만, 제대를 하고 나니 굉장히 재미있었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립기도 하고. 심적으로 편안했던 시기였죠.”
- 그렇게 좋으면 다시 입대를 하는 것도 ….
“그건 아니죠. 하하하! 저,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 늦은 나이에 입대해 고생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영장을 받고 나서 입대 연기를 많이 했어요. 계속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까. 더 이상 연기가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고생이 심했죠. 입대 전날까지 무대에 섰어요.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막공(마지막 공연)을 하지 못 한다는 것이었어요. 입대 전날 술을 많이 마셨죠.”
장덕수가 입대 당시 하고 있던 공연은 ‘솔로의 단계’라는 뮤지컬이었다. 상대역은 요즘 가수, 연기자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차지연이었다.
“입대 전날 공연이 끝나고 관객 앞에서 삭발 퍼포먼스를 했어요. 함께 출연한 정철호 형이 제 머리를 깎아 준 거죠. ‘이등병의 노래’를 틀어놓고. 팬들이 다 우는데, 공연을 보러 오신 어머니는 막 깔깔대고 웃으시더라고요. ‘저 머리통 좀 보라고’하시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일부러 그러신 것 같아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장덕수는 “입대 전에 무대에서 머리를 깎을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되겠냐”라고 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입대하고 2주쯤이나 되었을까. 부대에서 국방일보를 보니 ‘스페셜레터’라는 군대뮤지컬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스토리를 보니 작품의 주인공도 나이가 꽉 차서야 입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내 얘기 같더라고요. 솔직히 내 얘기를 쓴 건가 싶었어요.”
과대망상이라고?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장덕수가 입대 전까지 공연한 ‘솔로의 단계’와 ‘스페셜레터’의 극작가가 박인선이라는 동일 인물이기 때문이다.
장덕수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박인선은 ‘스페셜레터’, ‘몬테크리스토’, ‘오픈유어아이즈’ 등의 연출을 잇달아 맡으며 뮤지컬계의 ‘핫’ 연출가로 떴다.
장덕수는 ‘클릭비’ 출신 김태형과 함께 더블 캐스팅이다. ‘스페셜레터’의 포스터를 보면 두 사람이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듯 주먹을 맞댄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코믹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어쩐지 하드보일드 느와르풍이다.
그런데 장덕수의 팔에 시퍼렇게 돋은 파란 힘줄이 은근히 야성미를 풍긴다. 이 얘기를 했더니 장덕수가 “푸하핫” 유쾌하게 웃었다.
“남들이 ‘포샵’이 아니냐고 하는데, 절대 아니거든요. 그거 찍으려고 한 동안 대학로 다니면서 왼쪽 팔뚝을 탁탁 두드리고 다녔어요. 힘줄 올라오라고. 그리고 잔뜩 힘을 준 채 사진을 찍은 거죠.”
- ‘스페셜레터’ 출연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일단 연출자(박인선), 음악감독(양주인), 안무감독(정도영)을 보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이 시즌3인데, 군대에 가 있느라 시즌1·2를 못 봤죠.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오디션을 보고 “됐으니 어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상병이나 병장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은희’라고 했다. 살짝 고민이 됐다.
“주인공이 명목상으로는 ‘은희’지만 사실 이 작품은 군인들이 잘 해줘야 사는 작품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모두가 주인공이죠. 예? 아, 출연료 안 많아요. 출연료 많이 줘서 하는 건 아니에요. 흐흐”
- ‘스페셜레터’는 ‘군대스리가’를 비롯해 안무가 잘 짜여진 작품으로도 유명합니다. 뉴욕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죠. 그런데 장덕수란 배우는 춤이 잘 안 되는 배우로 유명하지 않나요.
오디션을 보고 “됐으니 어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상병이나 병장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은희’라고 했다. 살짝 고민이 됐다.
“주인공이 명목상으로는 ‘은희’지만 사실 이 작품은 군인들이 잘 해줘야 사는 작품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모두가 주인공이죠. 예? 아, 출연료 안 많아요. 출연료 많이 줘서 하는 건 아니에요. 흐흐”
- ‘스페셜레터’는 ‘군대스리가’를 비롯해 안무가 잘 짜여진 작품으로도 유명합니다. 뉴욕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죠. 그런데 장덕수란 배우는 춤이 잘 안 되는 배우로 유명하지 않나요.
“오해라니까요. 습득력이 느려서 그렇지. 무대에 올라갈 때는 어떻게든 만들어 놓고 올라간다니까요. 춤이 안 되는 건 알죠. 아니, 안 되는 게 아니라 습득력이 떨어질 뿐이죠. 지금까지 춤이 별로 안 보였지만, 저 사실 작품마다 춤을 안 춘 적은 없어요.”
- 옛날 얘기 좀 해볼까요. 일곱 살 때 KBS에 놀러갔다가 캐스팅됐다고 하는데, 너무 뻔한 스토리 아닙니까.
- 옛날 얘기 좀 해볼까요. 일곱 살 때 KBS에 놀러갔다가 캐스팅됐다고 하는데, 너무 뻔한 스토리 아닙니까.
“옆집에 아역배우 형이 살았어요. 그 형이 같이 가자고 해서 그 형네 부모님 따라 방송국에 간 거죠. 당시 ‘드라마게임’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담당피디님이 지나가다가 저를 보고 아역배우인 줄 착각하시고 대본을 주셨어요.”
일곱 살짜리가 대본을 제대로 이해할리 없다. 아들을 아역배우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어머니도 마찬가지.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매우 고전적인 방식으로 대본을 가르쳤다. 장덕수는 어머니 앞에서 대본을 통째로 외워야 했다.
“첫 리딩 때 대본을 안 가져갔어요. 줄줄줄 외니까 어른 연기자분들이 다들 신기해하시더라고요. 엄마도 이런 일을 처음 하시니까 실수를 많이 하셨죠. 장면 연결을 몰라서 같은 장면인데 다른 옷을 입히신 적도 있고, 의상 안 가져가신 적도 많고.”
첫 드라마를 찍을 때, 장덕수는 죽을 뻔했다.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타는 장면. 놀이동산을 가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위험도가 높은 롤러코스터를 탈 때는 아이들의 키를 재게 되어 있다. 키가 모자라면 탑승하지 못 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드라마 촬영인지라 키가 한참 모자라는 장덕수를 그냥 올려 태웠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위로 쭉 올라간 상태에서 그만 제 몸이 의자에서 쑥 빠져버린 거예요. 같이 탄 백일섭 선생님이 ‘헉’하고 놀라시면서 저를 잡으셨죠. 제 바지춤을 잡으셨는데, 아마 안 잡으셨으면 저는 무조건 떨어지는 거였죠.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어릴 적 일이지만 그 순간은, 지금도 못 잊어요.”
장덕수와의 인터뷰를 위해 미리 자료를 조사하던 중, 매우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했다.
1990년 김청기 감독은 로보트 태권V의 마지막 작품을 내놓는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쳐 놓은, 당시 유행하던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그게 뭐지?”싶은 분은 ‘우뢰매’를 떠올리시면 될 듯.
장덕수는 로봇 태권V에서 깡통 로봇 ‘철이’ 역으로 출연했다. 당시 자료를 보면 ‘아역배우 장덕수가 실제 깡통을 뒤집어쓰고 열연했다’라고 나와 있다.
“그거 무지 고생했어요. 깡통 의상이 15kg 정도 되거든요. 어머니하고 저는 그걸 스턴트맨이 입는 줄 알았죠. 그런데 저보고 입으라는 거예요. 그거 입고, 피아노줄 매고 날아다니는 것도 하고. 완전 아기 때인데.”
기억하는 분이 많으시겠지만, 깡통 로봇의 유일한 무기는 가슴에서 발사되는 고춧가루탄이다. 실제로 깡통 로봇 의상에는 가슴에 고춧가루탄이 장착돼 있었다.
“진짜 고춧가루가 나와요. 당연히 맵죠. 문제는 이게 오작동이 많아 잘못하면 안에서 막 터져요. 죽는 거죠.”
- 그 어린 아이가, 그런 걸 도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기억하는 분이 많으시겠지만, 깡통 로봇의 유일한 무기는 가슴에서 발사되는 고춧가루탄이다. 실제로 깡통 로봇 의상에는 가슴에 고춧가루탄이 장착돼 있었다.
“진짜 고춧가루가 나와요. 당연히 맵죠. 문제는 이게 오작동이 많아 잘못하면 안에서 막 터져요. 죽는 거죠.”
- 그 어린 아이가, 그런 걸 도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끝나면 엄마가 장난감을 사주셨거든요. 꽤 괜찮은 걸로. 그것 때문에 한 거죠.”
촬영장도 좋았지만 어린 장덕수는 학교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장덕수는 “학교를 잘 못 가니까 더 좋아했던 것 같다”라고 했다. “공부도 잘 했다”라는 자화자찬도 빼놓지 않았다.
시험 때가 되면 어머니는 촬영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 학교 수업을 빼먹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학생이 시험은 반드시 봐야 한다는 것이 장덕수 부모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장덕수는 19살까지 아역배우, 청소년 배우로 살았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