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천하장사 이슬기. 용인|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2011 천하장사 이슬기(25·현대삼호중공업)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채널A ‘불멸의 국가대표-씨름편’ 촬영 현장에서 ‘이만기(49·인제대 교수)의 재림’으로 불리는 이슬기를 만났다.
2011년은 이슬기의 해였다. 188cm, 135kg의 당당한 체격을 지닌 이슬기는 지난해 설날장사를 시작으로 보은장사와 천하장사를 제패하며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들배지기, 잡치기 등 다양한 기술로 한때 무게와 체격이 중시되던 씨름계의 판도를 바꾼 선수라는 게 씨름인들의 평가다. 이만기도 이슬기에 대해 “현역 최고의 선수”라며 “기술이 아주 좋다”고 호평했다.
“보지도 않고 씨름 재미없다, 지루하다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예전에는 선수들이 기술보다는 무게에 중심을 두고 버티기를 했지만 요즘 씨름은 많이 다릅니다.”
이슬기는 “선수들 스스로도 ‘기술씨름을 해야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씨름이 달라졌다는 걸 너무들 몰라주신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씨름은 태백급(80㎏ 이하), 금강급(90㎏ 이하), 한라급(105㎏ 이하), 백두급(160㎏ 이하)까지 4개 체급으로 나뉜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이제 백두급도 과거와는 달리 ‘무제한급’이 아니라 최대 160kg으로 체중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당초 150kg이 넘었던 이슬기가 135kg까지 감량하고도 천하장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두급 선수들이 뚱뚱하니까 잘 뛰지도 못할 것 같다, 게으를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데 숙소 한번 와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저희도 다른 종목 선수들처럼 새벽에 러닝도 하고… 생각하시는 것보다 엄청 빠르거든요.”
지난해 KBS는 ‘천하장사 만만세’라는 씨름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만기-이준희-이봉걸 등 ‘3李’ 시절부터의 한국 씨름 중흥기를 자세히 다룬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슬기는 “씨름인으로서 관심을 갖고 봤는데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차분하던 그의 목소리 톤이 갑자기 올라갔다.
“예전 씨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인기많았을 때 선수로 뛰었으면 재미있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지금은 인기 없다, 침체기다’ 이러고 끝나버리니까 섭섭한 거죠. 어떻게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나아졌다 이런 모습은 보여주지도 않고… 시청자들이 ‘씨름은 끝났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 같더라구요.”
이슬기는 강호동(42·방송인) 이후 최고의 씨름선수로 꼽혔던 이태현(35·용인대 교수)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 선수이기도 하다. 이태현은 지난해 설날장사 대회에서 이슬기에게 패한 뒤 은퇴했으며 이슬기가 천하장사에 오른 11월 27일 공식 은퇴식을 갖는 등의 인연도 있다.
“이만기-이태현 선배님 계실 때처럼 씨름이 인기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씨름 부흥의 선봉에 서고 싶습니다. 설날에 씨름 경기장 많이 와 주세요.”
한국 씨름은 오는 21~24일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열리는 ‘설날장사씨름대회’로 한 해를 시작한다. 이슬기의 대항마로는 지난해 단오대회 결승에서 이슬기를 꺾었던 정경진(25·창원시청), 천하장사 대회 결승에서 이슬기와 맞붙었던 장성복(32·동작구청) 등이 꼽힌다. 각 체급 장사 결정전은 KBS 1TV를 통해 중계될 예정이다.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