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으랏차차 스토리
8월2일까지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하는 <형제의 밤>은 제목 그대로 어느 형제의 하룻밤 이야기다.
부모님은 느닷없이 “핀란드로 가야겠다”며 여행짐을 쌌고, 아들 연소(이교엽 분)가 부모님을 공항으로 모셔드리는 길에 그만 뒤에서 덤프트럭이 덮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연소는 에어백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부모님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어두운 장례식.
형제의 밤은 장례식이 끝난 날, 그날의 밤이다.
이런 이야기를 얼마나 길게, 흥미롭게 끌어갈 수 있을까가 궁금했다. 관객으로서도,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도 가질 만한 궁금함이었다. 작가 김봉민은 관객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친다.
평범한 형제의 스토리는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양파처럼 껍질을 벗는다. 서두르지도 않고, 무리하지도 않는다. 때가 되었으니 벗긴다는 식으로 칼을 댈 뿐이다. 그저 사이가 나쁜 친형제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재혼한 부부의 배다른 형제다. 연소는 아버지의 전 아들이고, 수동(권오율 분)은 어머니의 전 아들이다.
연소는 아버지를 도와 곱창집을 운영했고, 수동은 4수 끝에 대학에 들어가 몇 년 째 라디오 PD 입사 준비를 하고 있다. 연소는 소줏병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지만, 수동은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 어머니가 남긴 그림 한 장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요한 동기를 제공한다.
무대 위의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웃지 않는다. 그저 관객이 웃을 뿐이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독설을 상대에게 퍼붓지만, 관객은 웃는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진다. 실은 하나도 웃기지 않는 장면에서조차, 관객은 웃는다. 아무도 “나는 왜 웃고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여기에 이 작품, <형제의 밤>의 묘미가 있다.
사실은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형제의 이야기는 점점 극단적으로, 어두운 과거를 향해 치닫는다. 그리고 출생의 비밀, 부모의 사랑과 비극이 하나 둘씩 드러나게 된다. 형제의 마음이, 그 아픔이 가뜩이나 크지 않은 객석을 무겁게 누른다.
웃지 않으면 한숨을 쉬어야할지 모른다. 시큰한 눈가를 감추기에는 웃음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관객은 배우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크게 웃는다. 그 웃음은 후반으로 갈수록 확성된다. 이야기의 껍질이 벗겨질수록, 눈이 매울수록, 더 크게 웃는다.
그래서 <형제의 밤>은 웃긴 작품이지만 누구도 ‘웃기는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는 작품이다. 다시 말하지만, 작가의 힘이 대단하다. <형제의 밤>이 첫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막은 내렸지만, 이들 형제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부모의 그늘을 잃고 덜렁 던져져 버린 두 사람이 거칠고 모진 세상에서 무사생존하길 바란다.
두 사람이 마침내 서로에게 건넨 소줏잔에, 내 잔 하나를 갖다대고 싶다. 우리 모두, 꼭 살아남읍시다. 건배.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