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모비스에서 긴 여정을 걸어온 유재학 감독(왼쪽)과 이도현 사무국장. 둘은 15년간 영광의 세월을 함께했지만 다음 달 이 국장이 대한양궁협회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맞게 됐다. 방콕(태국)|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통역과 홍보, 운영 거치며 음지에서 노력
영광 뒤로하고 다음 달부터 새로운 인생 펼쳐
“감독님과 소주 한잔 하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울산 현대모비스의 전성기를 묵묵히 지탱한 이도현 사무국장(45)은 현재 태국 방콕에서 열리고 있는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 챔피언스컵’을 지켜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이번 대회를 마치면 17년간 정든 친정과 작별하기 때문이다.
대회 개막 이틀째인 25일 방콕의 숙소에서 만난 이 국장은 친정과 처음 인연을 맺었던 때부터 떠올렸다.
“정확히 17년 전인 2002년 9월이었다. 당시 박승일 코치가 구단에서 코치 겸 통역을 맡기로 했다. 그런데 급작스레 루게릭병이 발견되면서 대체 인원을 물색하게 됐고, 내가 다녔던 스포츠마케팅 회사와 협업을 하던 구단이 제안을 해와 통역 업무를 처음 시작하게 됐다.”
이 국장은 주위 또래들처럼 AFKN과 스포츠뉴스 등을 빠짐없이 챙기는 ‘NBA 키즈’였다.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다른 학교를 찾아다니며 매일같이 농구 코트를 누볐다. 대학 졸업 후 희망 진로 역시 1순위는 프로농구와 관련된 업무였다.
이 국장은 “입사 후 통역과 국제업무, 홍보, 운영 등 여러 분야를 경험하게 됐다. 사무국 인원이 많지 않은 점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됐다”면서 “함께 고생한 수많은 선수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역시 고(故) 크리스 윌리엄스다. 실력과 인성 모두 뛰어난 선수였다. 서로의 가족들과도 자주 만날 만큼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2년 전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유재학 감독과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국장은 2004년 9월 부임한 유 감독과 15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보내면서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됐다. 2015~2016시즌부터는 사령탑과 사무국장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지난 2018~2019시즌 통합우승의 기쁨을 나란히 누렸다.
이 국장은 “유재학 감독님과 지내면서 농구를 보는 눈이 새로 뜨였다. 그간 알던 농구와는 또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됐다”면서 “사실 구단을 떠나게 되면서 감독님께 이를 말씀드리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최근 퇴사 소식을 전하던 날 저녁, 함께 소주를 마셨는데 둘이서 정말 펑펑 울었다. 내가 먼저 울음을 터뜨리니 감독님께서도 안 흘리시던 눈물을 보이시더라. 정말 죄송하고 고마웠다”며 속 깊은 말을 꺼내놓았다.
입사 후 6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과 4차례 통합우승의 감격을 맛본 이 국장은 모기업의 인사이동으로 다음 달부터 대한양궁협회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비록 몸은 떠나지만 마음만큼은 영원히 친정과 함께하겠다는 소회에서 농구인의 진심이 느껴졌다.
“이곳은 제 청춘을 모두 바친 곳 아닙니까. 끝까지 응원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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