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전기차 보조금, 미국차가 절반 가져갔다

입력 2022-08-23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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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그룹의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위)와 기아 EV6는 미국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얻으며 올해 상반기 현대차그룹의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2위까지 끌어올렸지만,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며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한국차 전기차 보조금 제외…형편성 논란

미국 전기차에 447억7000만원 지급
특히 테슬라는 442억 가까이 쓸어가
美보조금은 현지 조립 차량만 혜택
현대차, 판매량 감소 피할 수 없어
외교부 “WTO·FTA 위반 소지 있다”
테슬라, GM 등 미국산 전기차가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정부 전기차 보조금 중 절반 이상을 가져간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한국산 전기차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 시행으로 보조금 혜택에서 제외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21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올해 상반기 수입 전기 승용차에 지급한 보조금은 822억5000만 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약 54%인 447억7000만 원이 미국산 전기차에 지급됐다. 특히 테슬라는 모델 3와 모델 Y를 앞세워 441억9000만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쓸어갔다.

GM의 경우 상반기에는 보조금을 지급한 차량이 81대(볼트 EUV)에 불과했지만, 신형 볼트 EV와 EUV 판매가 본격화되면 미국산 전기차에 지급되는 보조금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한국산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 0원

미국은 16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고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한해 중고차는 최대 4000달러(약 524만 원) 신차는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북미에서 차량을 조립해야 하고 내년 1월부터는 일정 비율 이상 미국 등에서 만들어진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미국은 기존 ‘보조금 지급’을 ‘세액공제 혜택’으로 이름만 바꿔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와 전기차 관련 산업의 자국 내 공급망 구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현대·기아차다. 현재 미국에서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르는 원동력이 된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아이오닉5 기본 트림의 가격이 3만9950달러(약 5300만 원)에서 4만7450달러(약 6300만 원)로 1000만 원 가량 높아지면서 테슬라 모델3 기본형(4만6990 달러)보다 더 비싸졌다.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박진 장관, 미 국무장관에 문제 제기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의 보조금 지급 제외는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협정 3호(수입품 대신 국내 상품 사용을 조건으로 하는 보조금 지급 금지)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2조 2항(한국산 제품을 미국산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위반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박진 외교부 장관은 19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인플레이션 감축법 통과에 따른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중단에 대한 업계의 우려를 정식으로 전달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박 장관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인한 한국 전기차 보조금 중단이 WTO 최혜국 대우 원칙과 FTA 내국민 대우 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한미 FTA와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하며 우리 정부에 미국 정부와 즉각 문제를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미국 정부에 수입 전기차 및 배터리에 대한 세제 지원 차별 금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여야 합의로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조금 지급 대상 제외 해법은 있나

하지만 미국의 이같은 조치를 당장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11월 8일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미국에 2025년까지 총 105억 달러 투자 약속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화답했지만 3개월 만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속앓이를 하고 있다.

현대차는 현재 미국에서 조립하는 전기차가 없다. 올해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기존 생산라인에 3억 달러(약 3600억 원)를 투자해 제네시스 GV70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지만 워낙 생산 물량이 적다. 미국 조지아주에 6조3000억 원을 투자해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지만 2025년 완공 예정이기 때문에, 최소 3년간은 전기차 판매량 감소로 인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 차원의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기차 전용 공장 완공 시기를 앞당기거나 기존 생산 라인을 변경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22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당초 내년 상반기로 예정되었던 전기차 전용 공장 착공을 올해 안으로 당기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전용 공장 설립에는 통산 2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올해 조기 착공되면 2024년 하반기에는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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