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이미지로 밝혀진 ‘야구장 여신’ 영상 ⓒ뉴시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최근 SNS를 달군 ‘야구장 여신’ 가짜 영상부터 대전 오월드 늑대 탈출 당시 퍼진 AI 합성 사진까지, AI 콘텐츠가 현실 판단을 흔드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실재감 결핍: 한국은 어떻게 AI에 대한 현실 감각을 잃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내 생성형 AI 오남용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매체는 최근 국내 SNS에서 화제가 된 이른바 ‘야구장 여신’ 영상을 대표 사례로 들었다. 해당 영상은 프로야구 경기장 관람석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을 담은 5초짜리 영상이었다. 영상은 SNS에서 ‘한국 야구 여신’, ‘평균적인 한국 여성’ 등의 제목으로 퍼졌고, 조회 수는 1500만 회를 넘겼다.
● 조회수 1500만 ‘야구장 여신’…알고 보니 AI 영상
하지만 해당 영상은 실제 인물이 아닌 AI가 생성한 가상 이미지였다.
영상 곳곳에 오류가 있었다. 전광판에는 은퇴 선수인 조인성과 현역 선수인 김서현이 대결하는 것처럼 표시돼 있었다. 응원 문구도 ‘최강 두산’이 아니라 ‘최강은 두산’으로 잘못 적혀 있었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야구장 여신 되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관련 프롬프트가 공유됐다. 많은 SNS 이용자들은 이 프롬프트를 활용해 자신의 사진을 야구장 관람석에서 찍힌 듯한 이미지로 바꿔 올렸다.
SCMP는 한국 사회에서 AI 생성물이 단순 재미를 넘어 공공 안전까지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 사례로 지난 4월 대전 오월드 늑대 탈출 사건도 언급됐다. 당시 온라인에는 늑대 ‘늑구’가 학교 앞 교차로를 지나가는 듯한 사진이 퍼졌지만, 이는 한 직장인이 AI로 만든 허위 이미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늑구가 오월드 동물원을 탈출한 8일 수색 당국에 제보된 가짜 사진(대전소방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뉴스1
문제는 재난 대응 과정에서도 혼선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대전시 재난 관리 당국은 해당 이미지를 실제 상황으로 인식해 주민 대피 관련 공문과 브리핑 자료에까지 활용했다. 경찰은 이후 이미지 제작자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 “AI 슬롭 소비 세계 최고 수준”…외신의 경고
SCMP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저품질 AI 생성 콘텐츠, 이른바 ‘AI 슬롭(AI Slop)’ 소비가 가장 활발한 국가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매체는 디지털 편집 플랫폼 캡윙(Kapwing)의 2025년 보고서도 인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클릭 수를 노리고 조작된 저품질 AI 콘텐츠, 이른바 ‘AI 슬롭’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로 꼽혔다.
AI 기술의 부작용은 범죄 영역에서도 드러났다. 매체는 2024년 텔레그램 기반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예로 들었다. 당시 학생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불법 합성물이 다수 유포됐다. 일부 피해자는 동급생이 만든 합성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시장 역시 AI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2년 7월부터 2025년 7월 사이 감소한 청년 일자리 21만1000개 가운데 98%가 AI 자동화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현장에서도 생성형 AI를 활용한 부정행위와 AI 디지털 교과서 오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 욕망의 거울이 된 AI…전문가들 ‘사회적 합의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 특유의 외모·이미지 중심 문화가 AI 과몰입과 결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명주 AI 안전연구소장은 SCMP와의 인터뷰에서 “외모와 이미지에 대한 문화적 관심이 높은 한국에서 AI는 억압된 욕망과 좌절을 대리 만족하게 해주는 왜곡된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창배 국제인공지능윤리학회(IAAE) 이사장도 AI 윤리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그동안 윤리적 가치보다 AI 기술 발전을 지나치게 우선시해 왔다”며 “AI의 유해한 결과는 과거 어떤 기술보다 인간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는 AI 기술의 활용 범위와 책임을 두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며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교육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연 기자 xunnio4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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