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박명환‘新라이벌열전’

입력 2008-01-17 14:22:14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김선우가 두산 유니폼을 입고 국내로 유턴하면서 그의 활약 여부에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선우의 국내 복귀에 흥미가 가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라이벌 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동갑내기이자 함께 미국에서 활약한 서재응이 김선우에 앞서 KIA와 계약해 두 코리언 빅 리거간의 맞대결을 한국에서 볼 수 있게 됐다. 팬들은 물론 각 언론들도 몸값마저 똑같은 김선우와 서재응의 라이벌 대결에 벌써부터 깊은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김선우에게는 또 다른 맞수가 기다리고 있다. LG 트윈스의 박명환. 역시 김선우와 77년생 동갑이다. 거기에 두산의 한 지붕 두 가족인 LG 소속. 두산 입장에서는 팀의 토종 에이스로 활약하다 FA자격을 얻은 후 라이벌 LG로 이적한 박명환에게 일종의 애증이 있다. 어쩌면 그가 김선우와 진검승부를 펼쳐야 할 진정한 의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야구 인생을 걸어온 박명환(좌)과 김선우 96년 나란히 두산으로부터 고졸우선지명을 받았던 김선우와 박명환의 야구 인생은 서로 다른 그래프를 그려왔다. 고교시절 김선우는 동급최강이었다. 휘문고 1학년 때부터 청소년 대표에 발탁됐을 정도로 동급생은 물론 선배들을 능가하는 구위를 자랑했다. 반면 박명환은 충암고 3학년이었던 95년 초까지도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공은 빠른데 제구력이 엉망인 미완의 대기였을 뿐이다. 냉정히 말해 그 당시 박명환은 김선우에에 비해 한 수 아래였다. 그러다 모교 선배인 장호연의 지도를 받고 슬라이더를 습득하면서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변신에 성공한 박명환은 그해 8월 열린 봉황대기에서 충암고의 우승을 이끌며 일약 고교 최대어로 부상했다. 충암고 6승을 모두 책임졌고 방어율 0.84라는 경이적인 성적표. 김선우가 국제대회 출전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김선우와 박명환은 나란히 연고팀 두산으로부터 지명을 받았으나 서로 다른 길을 택했다. 박명환은 당시 고졸 최고대우였던 계약금 3억원에 두산에 입단했지만 김선우는 고려대로 갔다. 두산에 입단한 박명환이 첫해 7승, 이듬해 8승을 거두며 점차 프로에 적응해 나가던 사이 김선우는 97년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다. 선진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보고 싶다던 어릴 적 꿈을 실현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라는 다른 무대였지만 두 선수의 이후 명암은 엇갈렸다. 박명환은 한때 부상으로 고생도 했지만 두산의 붙박이 선발로 꾸준히 출전, 팀에 없어선 안 될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전천후로 활약한 2001년에는 팀의 한국시리즈우승이라는 기쁨도 맛봤다. 하지만 미국에 간 김선우는 선발 경쟁에서 번번이 밀리며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떠돌았고 단 한번도 메이저리그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편 둘은 지난해 겨울에는 약속이나 한 듯 일본진출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둘의 처지는 달랐다. 박명환은 FA자격을 얻어 당당히 일본행을 노린 반면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잃은 김선우에게 일본은 일종의 도피처였다. 일본 진출은 모두 좌절됐지만 박명환은 LG로 이적하며 40억원이라는 엄청난 몸값을 챙겼다. 이적 후 10승 6패 방어율 3.19로 성적도 양호했다. 그러나 김선우의 2007년은 고단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했지만 시즌 내내 마이너리그에서만 공을 던졌다. 결국 김선우와 박명환은 2008년 라이벌 팀의 주축 선발로 마주 서게 됐다.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확연히 다른 야구 인생을 걸어온 두 선수는 이제 야구를 알만한 30줄에 접어들었다. 각자의 자존심을 걸고 다음 시즌 마운드에서 진검승부를 펼칠 김선우와 박명환의 대결이 기대된다. 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