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시대‘성공드라마’가성공한다

입력 2008-01-22 09: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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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에 젖지 마. 나쁜 일은 생기기 마련이야. 사람들은 애정을 돌려주지 않아. 다 그렇게 살다가 죽는 거야. 힘들겠지만 받아들여.” 실연의 아픔에 몸부림치는 아들에게 던지는 어머니의 충고. 지난해 말 개봉한 이선 호크 감독의 영화 ‘이토록 뜨거운 순간’에 나온 대사다.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지만 비현실적인 달콤함은 배제됐다. 무한 경쟁 시대. ‘쿨(cool)’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세태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TV 드라마는 비정성시(悲情城市)를 힘겹게 살아가는 시청자에게 한결같이 조언한다. “살아남으려면, 굳세어라.” ○강한 것이 아름답다 요즘 드라마가 몰두하는 키워드는 ‘성공’이다. KBS와 MBC의 간판 사극은 한결같이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고 말한다. KBS는 지난해 ‘대조영’의 성공담에 이어 ‘대왕 세종’의 녹록하지 않은 성장기를 엮어 내기 시작했다. MBC ‘이산’도 정조의 험난했던 세손 시절에 주목한다. 고난을 이겨내고 명군으로 거듭나는 성공 스토리가 흥행 요소다. ‘이산’의 한 장면. 고모인 화완 옹주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슬픔에 젖어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둥 나약한 소리를 하는 세손 이산에게 중신 채제공이 조언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아닌, 운명이 결정한 일을 겪습니다. 그런 생각은 소용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것뿐입니다.” 이런 와중에 남녀의 사랑싸움으로 바뀐 SBS ‘왕과 나’는 같은 시간대 ‘이산’과의 시청률 경쟁에서 뒤로 밀려났다. ‘왕과 나’의 초반 반짝 인기를 주도했던 매력도 사랑 얘기가 아니라 판내시부사 조치겸(전광렬)의 강한 생존력이 뿜어낸 카리스마였다. 현대극도 현장의 치열함을 숨 가쁘게 보여 주는 쪽이 인기를 끈다. MBC 의학 드라마 ‘뉴 하트’에서 로맨스는 숨고르기를 위한 양념에 불과하다. 의사로서 올곧은 가치관을 지키려는 주인공 최강국(조재현)의 고독한 싸움이 기둥 이야기다. 비슷하게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했지만 피상적인 스타일만 보여 주는 데 그치고 주인공의 역경과 고뇌가 부족했던 최근작 ‘로비스트’와 ‘옥션 하우스’는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비현실적인 사랑 얘기엔 시큰둥 치열한 생존경쟁 드라마가 아닌 가볍고 바삭한 로맨틱 코미디나 비현실적인 멜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쾌도 홍길동’(KBS2), ‘깍두기’ ‘비포 & 애프터 성형외과’(이상 MBC) 등 로맨틱 코미디와 ‘못된 사랑’(KBS2), ‘겨울새’(MBC) 등 멜로 드라마는 시청률이 방송사의 기대만큼 나오지 않고 있다. 2002년 MBC ‘네 멋대로 해라’로 호응을 얻었던 인정옥 작가는 “요즘 멜로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는 불륜이나 삼각관계 등 엇비슷한 설정을 반복하고 비현실적 캐릭터를 내세우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재벌 2세와 순정녀의 사랑 같은 전형적이거나 상투적인 구도로는 시청자의 관심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황인뢰 PD는 “지난해 MBC ‘고맙습니다’의 성공에서 보듯이 잘 짜인 이야기의 힘은 분명히 통한다”며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제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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