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눈으로세상에말한다…“삶은소중해”

입력 2008-02-12 09: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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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인생, 그는 자신만만했다. 부족할 것이 없었다. 갑자기 뇌중풍(뇌졸중)이 찾아왔다. 의식을 되찾고 보니 전신이 마비됐다. 왼쪽 눈만 빼고, 1cm도 움직일 수 없었다. 죽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잠수종’(사람이 물속에 들어가 일할 수 있게 만든 종 모양의 물건)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육체는 심해로 가라앉는 잠수종처럼, 무겁게 무겁게 침잠했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그는 왼쪽 눈의 깜빡거림을 이용해 15개월 동안 자신의 삶을 기록한 책을 썼다. 왼쪽 눈을 20만 번 움직여야 했다. 책 제목은 ‘잠수종과 나비’(한국어 제목 ‘잠수복과 나비’). 그의 육체는 잠수종이었지만 그의 영혼은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아올랐다. 그는 책이 출간된 지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패션 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던 장도미니크 보비(마티외 아말리크)의 실화. 이를 스크린에 옮긴 영화 ‘잠수종과 나비’(14일 개봉)는 줄리언 슈너벨 감독에게 작년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 올해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안겼다.영화는 상당 부분이 보비의 시선에 맞춰 촬영됐다. 그가 왼쪽 눈으로 보는 세상이 그대로 영화의 장면이다. 그가 눈을 깜빡이면 화면 전체가 명멸한다. 관객은 그가 느끼는 절망과 두려움을 그대로 같이 느끼게 된다. 그는 말을 할 수 없다. 대사는 그의 속마음일 뿐이다. 처음에 의사가 그에게 증상을 설명해 줄 때 그는 속으로 말한다. “이게 사는 거야?” 그가 눈의 깜빡임으로 만든 첫 문장은 ‘죽고 싶다’였다. 영화는 관객의 눈물을 쥐어짜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보비는 아이들을 안아줄 수도 없는 자신을 ‘좀비 같은 아빠’라고 비하하지만, 자신에게 왼쪽 눈뿐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상상력이 남아 있음을 깨닫고 자기 연민을 극복하는 강한 사람이었고 그 와중에도 속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을 건네는 사람이었다.침을 질질 흘리면서 눈으로 한 단어를 표현하는 데 2분이 걸리는 그의 모습은 아름답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저렇게 살면 뭐하나. 나 같으면 죽어 버린다”고 말했던 경험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당신은 삶의 소중함을 몰랐던 자신의 건방짐을 뉘우치게 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숨쉬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12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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