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산책]어느스타든‘실패의눈물’있었다

입력 2008-02-22 09: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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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보지 못하는 퇴역 장교 프랭크(알 파치노)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고학생 찰리(크리스 오도넬)의 짧은 뉴욕 여행을 다룬 1993년 미국 영화 ‘여인의 향기’에 이런 장면이 있다. 고급 식당에서 프랭크가 낯선 여인의 손을 잡아끌고 스테이지로 나가 탱고를 추는 장면인데 탱고에 서툰 여인이 실수를 걱정하자 프랭크가 이렇게 말한다. “스텝이 꼬이면 그게 바로 탱고”라고. 이 대사는 묘한 울림이 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이 겪는 고통과 극복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경기 고양시에서 막을 내린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관중석에 앉아 첫 선수부터 마지막 선수의 연기까지 지켜본 사람이라면 선수가 연기 도중 실수로 빙판에 넘어지는 장면을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게 바로 피겨”라고. 프리스케이팅에는 쇼트프로그램 예선을 통과한 선수 24명이 성적의 역순으로 나섰는데 4분여간의 연기를 펼치는 도중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선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그래도 나름대로 자국에선 피겨 1인자들인데 출전 순번이 앞쪽인 선수들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다. 스텝은 꼬이고 점프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순번이 중간쯤 오면 그제야 선수들의 점프가 비교적 안정된다. 마지막 그룹에 와서야 마침내 음악을 몸으로 느끼며 표현하는 경지가 펼쳐진다. 이 모든 선수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이번 대회에는 부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김연아(18·군포 수리고)가 얼마나 굉장한 연기를 하는지를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어린 소녀가 평생 해왔을 노력이 일반인으로선 상상 못할 수준임을 비로소 알았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감동적이었다. 스포츠는 물론 결과가 중요하다. 하지만 과정이 함께 드러날 때 비로소 스포츠가 감동을 주는 드라마로 다가온다. 사실 과정을 모두 본다면 어느 선수의 삶인들 극적이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 결과에만 치우치는 것은 아닐까.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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