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김장훈이태안대신보령에간이유

입력 2008-02-23 10:11:53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00만명 대 8만6000명′ 영화 관객 수의 비교가 아니다. 지난 해 12월 기름유출사고 이후 방제작업에 나선 충남 태안과 보령에 투입된 자원봉사자의 수다. 태안에는 기름 유출 사고가 터진 이후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았다. 그 중에는 이명박 당선인을 비롯해 박근혜 정동영 등의 정계인사, 비, 바다, 이경규 같은 연예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보령에는 태안의 10분의 1도 안되는 8만6000명이 찾았다. 그 중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유명인은 김장훈 이전에 문성근이 조용히 다녀간 곳이 전부다. 이것이 가수 김장훈이 자신의 팬클럽 회원 300여명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와 함께 보령을 찾은 이유다. 김장훈은 보령시 대천항 서쪽으로 39km 정도 떨어진 호도(狐島)에서 방제작업을 하고 "사람들이 힘든 곳은 안 가려고 하고 체험으로 (태안을) 가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이 섬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 작업에 동참한 보령시 강학서 유류사고지원팀장은 "지금 태안은 자원봉사자들이 넘치는 상황"이라며 보령 지역에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유명인사가 거쳐 간 태안을 고집하기 때문에 일손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김장훈은 이날 현장에 도착한 후 "참담하다" "황당하다"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밀물 때문에 2시간에 그친 짧은 작업시간을 한탄하기도 했다. 평소 넉살좋고 활달한 성격의 그였지만 이날 호도의 해안에서 방제작업을 하는 김장훈의 얼굴은 내내 무거웠다. ●"주민들 웃음에 가슴 아파" 하지만 김장훈 일행의 방제작업 덕분에 섬 주민들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미소가 흘렀다. 봉사자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준 중년 여성들은 아이들을 데려와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어르신들은 봉사자들이 벗어놓은 방제복을 재활용하겠다며 삼삼오오 모여앉아 기름때와 물기를 닦아냈다. 김장훈은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주민들이 어린 아이들처럼 웃으니 오히려 가슴이 아팠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작업 분량도 많지 않은데다 기상 악화로 다음날까지 예정된 방제작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호도 2차 방제 작업은 오는 28일, 29일로 잡혀있다. 강학서 팀장은 주민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만약 오늘 이 섬에서 자면 기상 악화로 당분간 배가 못 떠서 김장훈 씨가 25일로 예정된 대통령 취임식에 못 갈 수도 있다"면서 "그런 큰 행사만 아니면 기상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고 섬에 모셔두었을 것"이라고 뼈있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김장훈 일행이 섬을 떠날 때 호도 주민들은 일일이 악수하며 또 보자고 했다. 취재진에게도 아쉬운 듯 손을 흔들었다. 한 관계자는 김장훈을 두고 "메시아"라는 표현까지 썼다. 태안의 10분의 1도 도움을 못 받은 보령 주민들은 김장훈 발(發) 봉사 행렬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보령=스포츠동아 정기철 기자 tomjung@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