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자존심뉴욕필“내일평양을적신다”

입력 2008-02-25 0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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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26일 공연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필, 빈 필과 함께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손꼽힌다. 1842년 창단된 뉴욕 필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향악단으로 미국의 문화적 자부심이기도 하다.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은 서로 ‘악의 축(Axis of Evil)’ ‘공화국의 적(敵)’으로 비난하며 대립해 온 북한과 미국이 처음 펼치는 ‘음악 외교’로 기대를 받고 있다.》자린 메타 뉴욕 필 사장은 24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평양거리에 보이던 반미선전물 일부를 철거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번 공연이 북-미 국교 정상화에 기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방송 중계팀 육로로 방북뉴욕 필을 이끌어온 지휘자는 구스타프 말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주빈 메타, 피에르 불레즈, 쿠르트 마주어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다.특히 1958년부터 뉴욕 필을 이끌었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베를린 필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함께 쌍벽을 이룰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 음악감독 겸 지휘자 로린 마젤은 2002년 9월부터 이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다. 뉴욕 필은 창단 때부터 매 시즌 해외투어를 해왔으며 1930년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가진 첫 유럽 투어 75주년을 기념해 2005년 유럽 5개국 13개 도시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연간 180회의 연주를 펼치며 2004년 12월에는 오케스트라 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운 1만4000번째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뉴욕 필은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 코플랜드의 ‘관현악을 위한 내포(內包)’ 등 당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초연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신세계로부터’는 평양 공연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이기도 하다.뉴욕 필은 평양 공연에서 거슈윈의 ‘파리의 아메리카인’,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중 제3막 전주곡, 미국 국가와 북한 국가를 연주한다. 평양 공연은 남북한을 비롯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며 이를 위해 MBC와 미국 ABC방송, 독일 아르테 TV 등 방송 중계팀이 15대의 차량에 장비를 싣고 육로로 방북했다.마젤은 20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우리는 왜 평양에서 공연하는가’에서 “뉴욕 필이 평양에서 연주회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게 미국의 존재를 일깨우고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옛 소련-중국서도 음악외교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3세의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압도적 점수차로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은 당대 러시아 최고의 작곡가인 쇼스타코비치. “퇴폐적 부르주아 문화”라고 치부돼 왔던 미국 문화가 당시 소련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사건이었다.서방 오케스트라 중에는 미국 보스턴 심포니가 1956년 최초로 소련 땅을 밟았으며 뉴욕 필은 1959년 8월 흐루쇼프 당서기장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소련 3개 도시 순회공연을 했다. 뉴욕 필 지휘자 번스타인은 모스크바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주하기 전 청중을 향해 “여러분이 (볼셰비키)혁명을 일으키기 5년 전에 이미 스트라빈스키는 (음악) 혁명을 성공시켰다. 그 후로 음악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당시 미국 닉슨 대통령이 ‘핑퐁 외교’를 통해 역사적 중국 방문을 한 이듬해인 1973년 필라델피아 필하모닉은 베이징 인민대회당 무대에 섰다. 문화혁명을 겪으며 예술에 목말랐던 중국인들은 필사적으로 표를 구해 공연장으로 밀려들었다.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한국에도 광복 후 최초로 볼쇼이발레단과 모스크바 필 등 소련예술단이 동아일보사 초청으로 내한 공연을 가졌다.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필 공연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으며 5000여 명이 입석까지 가득 메웠다.당시 모스크바 필과 협연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42) 씨는 “테러에 대비해 무대와 객석의 불을 다 켜놓고 삼엄한 경계 속에 연주를 했다”며 “예술단원들이 서방으로 망명할까봐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까지 따라와 철저하게 감시하는 살벌한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2006년 10월에는 지휘자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첼리스트 고봉인 씨와 함께 평양에서 열리는 윤이상 음악제에 참가하려고 했으나 직전에 북한 핵실험 문제로 무산됐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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