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who]“옷보다밥솥!…남편은주방용품마니아”

입력 2008-04-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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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10번째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은 신치용(53) 삼성화재 블루팡스 감독. 3년만에 배구 코트 정상에 다시 선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저, 감독님 댁을 방문하고 싶은데요.” 잠시 뜸들이던 신 감독. “그럼, 그렇게 하죠.” 다행이다. 정확한 시간을 정하기 위해 다시 수화기를 들었을 때 전해온 볼멘 한마디. “허허, 집사람이 갑자기 청소하게 됐다고 입이 나왔어요.” 83년 선수촌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는 농구인 출신 아내 전미애(49)씨의 불평이란다. 신 감독은 그러면서 언론에 자신의 집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굳이 강조했다. 뻔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며 찾은 신 감독의 보금자리. 15일 서울 도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코트의 여우’ 부부와 만남이 이뤄졌다. 14년 된 애완견(요크셔테리어) 또치도 함께. 아, 중요한 걸 빼먹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얼짱’ 신혜인(23)과 혜림(26) 자매는 끝내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학교에 갔다나? 두 시간여의 인터뷰. 2%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믿음의 배구’로 3년만의 정상 축배 “어, 자연인은 사진 찍으면 안되는데….” 아내와 함께 거실 소파에서 다정한 포즈를 취해달라는 사진 기자의 부탁에 신치용 감독은 미소를 띠며 난색을 보인다. 차를 내오던 전씨도 지지 않고 되받아친다. “우리 별로 안∼친해요.” 배구 얘기를 안할 수 없었다. 고비가 언제였냐고. 우승 낌새는 언제 느꼈냐고. 위기는 6라운드를 꼽았다. 대한항공에 1-3으로 진 것. “경기야 이길 때도, 질 때도 있는데 내용이 너무 안좋았지.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동안 끝났어. 자극을 줘서 다음 상무를 잡았는데 천만 다행이었죠.” 이어진 말. “우리가 1라운드를 전승으로 마쳤잖아. 우릴 아무도 우승권에 분류하지 않았지. 어쩐일인지, 너무 잘 나가더라고. 그래서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전씨도 거든다. “맞아, 자기가 2라운드 시작할 때쯤 느낌이 좋다고 했어.” 기자들이 삼성을 우승 후보로 꼽지 않았을 때 기분이 어땠냐는 우문. 객관적으로 볼 때 현대캐피탈, 대한항공보다 전력이 뒤쳐졌던 게 사실이다. “자존심이 상했죠. 신진식, 김상우 은퇴시키고 꼴찌로 시즌을 끝내 문성민 잡으려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을 땐 ‘이런 평가 받으려고 그리 힘겹게 뛰어왔나’고 서글펐어요.” 선수층이 얇았다. 연령도 높고, 신장도 작고, 체력도 약했다. 그런데도 해냈다. ‘믿음’이라고 했다. 우승 인터뷰 때 “결국 사람이 하는 거더라”는 코멘트도 여기서 비롯됐다. 전력은 떨어져도 최태웅, 장병철, 석진욱 등 주력들의 경험을 믿었다. 시즌전 구단을 찾아 신 감독은 “현대엔 솔직히 어렵습니다. 대신 대한항공과 LIG에겐 승률 50이상은 보여줄 수 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1라운드를 거치며 자신감을 찾았다. 실천의 배구라 했다. “잔소리를 거의 안했죠. 대신 장점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수비에 승부를 걸었죠. 세계 배구가 높이와 파워를 중시하는데 디펜스를 강조하느냐는 비판도 있었죠. 그러나 상대 서브를 정확히 받아냈을 때 이미 절반은 우리 쪽으로 넘어온 겁니다. 실천하는 게 먼저죠. 그렇다고 공격을 못한 것은 아니에요. 안젤코가 있었죠.” 웃는 노장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챔프전 분위기 확 바꿔놓은 ‘신의 쇼’ “저는 쇼를 잘 못해요.” 신 감독의 이 말은 거짓이다. 지난 주말 챔프 3차전에서 증명됐다. 2-1로 앞서던 마지막 4세트 9-9 상황. 비디오 판독과 최초 주심 판정을 뒤엎고 규정에 없던 ‘노 카운트’까지 오간 초유의 사태에서 신 감독의 ‘잔꾀’가 빛을 발했다. 감독관석까지 올라가 탁자를 내리치며 거세게 항의한 것.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현대가 상승세였죠. 우리는 지쳐가고 있었는데 선수들에게 휴식과 긴장을 적절히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이 우승을 확정짓는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또 할 수 있습니다. 운명이 걸렸는데 가만히 있을 감독이 어딨나요. 옳고 그름을 떠나 상황 반전이 필요했어요.” 역시 ‘여우’란 별명이 괜한 게 아니다. 삼성 우승이 확정되고 TV중계 엔딩 화면에 전씨와 두 딸이 우는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조금은 상기된 표정의 전씨는 말했다. “그냥 울컥했어요. 괜한 오해를 살까 선수 가족과도 거의 왕래하지 않거든요. 남편이 감독관석으로 올라올 땐 혜인이가 ‘아빠 얼른 내려가. 참아줘’라고 기도까지 했어요. 어찌나 떨렸는지, 마음이 편안해지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남편믿고 따라준 선수들에 정말 고마워요.” 사실 신 감독도 9수 마수를 피할 수 없었다. 95년 팀 창단후 97년 겨울리그 첫 우승했을 때와 2005년 프로 출범 원년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던 그다. 겨울리그 10연패를 노리던 삼성은 2006년 현대에 무너졌다. 당시 선수 기용은 지금 돌이켜봐도 쓰라리다. “작전을 잘 못짰어요. (후)인정이와 부딪힌 (석)진욱의 부상. 제 잘못이었죠. 내 동기 김철용도 LG정유를 이끌며 9연패에 그쳤잖아요. 저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9’라는 숫자가 참 두려워요.” 내친김에 한마디 더 물었다. FA 제도, 해외 진출을 어찌 생각하냐고. 한때 선수 싹쓸이로 비판받은 적도 있으니 신 감독에겐 참 민감한 얘기다. 금세 되돌아온 “찬성한다”는 대답. 그가 설명했다. “우리 선수가 나이가 많고, 새로운 선수가 필요하니 이제야 ‘찬성하느냐’는 비판이 있는 걸 잘 알아요. 해도 아마추어 시절과 프로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해요. 남자배구만 FA가 없잖아요. 몇몇 팀들은 8년을 자격 조건으로 하자는데 군대까지 다녀오면 10년입니다. 전성기는 다 끝나죠. 5년이 적당하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죠. 해외 진출도 마찬가지죠. 갈 수만 있다면 찬성합니다. 기회는 잡는 거죠.” 26년째 한 이불…아직도 “자기야~” 안하리라 그토록 다짐했건만 또 배구 얘기만 했다. 화제를 돌렸다. 코트가 아닌 집에서의 신 감독이 궁금했다. “지금껏 한 번도 ‘여보’라고 부르지 못했어요. ‘자기’라고 하는데 그런대로(?) 행복한 편이에요.” 전씨의 표현이다. 시즌이 되면 5개월 이상 가정을 포기해야만 하는 감독의 숙명. “가장 불행한 여자가 세끼를 꼬박 집에서 먹는 남편을 둔 사람”이라고 타박하는 신 감독에게 전씨는 “말은 저래도 가정적이죠. 여행도, 외식도 자주 하고…. 딸들은 연습장의 아빠 모습을 이해못해요. 매섭고 날카롭고. 낯설다는 말이 맞아요. 지금도 아빠와 말같은 덩치의 딸들이 끌어안고 뽀뽀하고 그래요..” 흐뭇해하던 신 감독 대뜸 한마디 던진다. “(딸들이)다 용돈 뜯어내려는 거야.” 쇼킹한 스토리도 있다. 신 감독은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유독 가정용품 및 식품 코너를 좋아한다. 옷을 고르다가도 슬쩍 사라져 전기 밥솥을 만지고 있다는 게 전씨의 설명. “주방 용품 마니아예요. 얼마전엔 떡 만드는 기계를 사왔는데 한번도 쓰지 못했죠. 사먹을 수 있는데 왜 저리 이상한 취미를 갖고 있는지.” 발끈한 신 감독. “내가 집을 너무 비웠나. 편하게만 살아서 그래. 그 좋은 걸 왜 사용 안해?” 내친김에 전씨는 재미있는 얘기를 더해줬다. 신 감독은 자주 ‘오늘의 명언’을 선수들과 전씨에게 전해준단다. 인터뷰전 숙소를 잠시 다녀온 신 감독은 이날도 어김없이 한 장 뽑아왔다. ‘남편은 밖에서 데려온 아들.’ 멋쩍어진 신 감독은 벌개진 얼굴로 “내가 그만큼 당신한테 소중하다는거야. 그냥 잘해줄 것을, 왜 고자질해?” 천생연분. 재미있는 가족이다. 근엄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코트를 응시하던 여우, 예상을 뒤엎는 신 감독과 세 가족의 알콩달콩 이야기. 어색하지 않은 부조화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의 스토리는 앞으로 계속된다. 쭈∼욱. 신치용 감독...? 1955년 경남 거제에서 출생한 신치용 감독은 어릴적 마도로스(선원)를 꿈꿨지만 배구계에 입문했다. 성지공고를 거쳐 성균관대(74학번)를 졸업한 신 감독은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낸 뒤 80년부터 95년까지 한국전력 코치, 91년부터 94년까지 국가대표 코치를 역임했다. 95년 신생팀 삼성화재로 옮겨 97년부터 2005년까지 겨울리그 9연패 신화를 이뤘고, 2002년엔 대표팀 감독을 맡아 부산아시안게임 우승을 이끌었다. 올 시즌 V리그를 또 한번 평정함으로서 10번째 우승 금자탑을 쌓았다. 농구 선수 출신 전미애 씨와의 사이에 혜림(26), 혜인(21) 2녀를 뒀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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