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비하인드스토리]‘황제’박주봉金좌절후눈물펑펑

입력 2008-05-09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박주봉은 한국 배드민턴 역사상 단연 최고의 스타다. 90년대 초·중반 배드민턴이 인기를 끌던 말레이시아에서는 박주봉의 이름을 딴 ‘주봉버거’, ‘주봉주스’와 같은 상품들이 유행할 정도였다. 박주봉은 배드민턴이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복식에서 김문수와 호흡을 맞춰 금메달을 딴 뒤 은퇴, 한체대에서 후배들을 가르쳤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을 1년 앞둔 시점에서 황제가 복귀했다. 대한배드민턴협회에서는 박주봉에게 최상의 조를 만들어주기 위해 배려했다. 주변에서는 혼합복식 파트너로 길영아가 가장 낫다고 판단했지만 박주봉은 한체대 제자인 라경민을 택했다. 우려와 달리 박주봉-라경민 조는 오픈대회를 휩쓸며 금메달 0순위로 꼽혔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 결승. 상대는 한국의 김동문-길영아 조였다. 배드민턴대표팀 김중수 감독은 “연습경기때는 김동문-길영아 조가 (박주봉-라경민 조에게) 절반도 못 쫓아왔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긴장한 라경민이 연신 실책을 범했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박주봉이 무슨 말을 해도 라경민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중수 감독은 “(라)경민이가 긴장한 탓인지 초등학교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간의 경기라서 코칭스태프는 벤치에 앉지 않았다. 김중수 감독은 “(김동문-길영아 조에게) 지라고 할 수도 없고,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이었다”라고 했다. 박주봉이 복귀할 때는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비판도 있었다. 박주봉으로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복귀의 명분이 서지 않는 상황. 은메달을 목에 건 박주봉은 호텔방에서 눈물을 흘렸고, 김중수 감독은 박주봉을 밤새 달래줘야 했다. 미안한 라경민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라경민은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려야 했다. 4년 뒤 라경민은 김동문과 호흡을 맞춰 시드니올림픽에 나섰다. 김동문-라경민조는 국제대회를 휩쓸며 금메달이 유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둘 다 홀렸다. 김동문-라경민조는 2004년 아테네에서 금메달에 재도전했지만 뜻밖에도 김동문이 평소와 달랐다. 라경민이 “오빠, 정신차려!”라고 흔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김중수 감독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이겨내지 못한 결과”라면서 “선수들을 좀 더 편하게 만들어줬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역 마지막 경기의 한을 가지고 있는 박주봉은 일본대표팀 사령탑으로 베이징올림픽에 나선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