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기자가간다]핑!퐁!자존심에구멍나는소리…

입력 2008-05-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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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눈 사이, 즉 미간에서 스윙은 끝이 난다. 팔꿈치의 각도는 90도, 라켓의 각도는 85도를 유지한다. 스윙에는 허리가 동반되어야 하고, 허리의 회전은 다리에서 비롯된다. 물의 흐름처럼, 동작은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스매시다. -박민규의 소설 <핑퐁> 중에서 - 지름 40mm, 무게 2.7g의 작은 공에 자신의 체중을 실어 온 힘을 다해 날린 스매시가 네트를 넘어 상대 코트에 꽂히는 순간의 쾌감. 탁구를 조금이라도 쳐 본 이들은 익히 알 것이다. 요즘에는 주변에서 탁구장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15년 전만해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차례가 올 정도로 탁구장이 붐볐다. 특별한 준비 없이도 라켓 하나면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데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팀의 선전이 이어지며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운동이 바로 탁구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점 하나. 탁구 선수와 실제로 경기를 해보면 몇 점이나 딸 수 있을까? 탁구 선수의 서브를 받아넘길 수는 있을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스포츠동아>가 나섰다. ○ 이번엔 몇 점? 체험을 위해 찾은 곳은 인천 서구 원당동에 있는 대한항공 여자 탁구단 체육관. 체험 파트너는 현재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김정현(23)이다. 이날 김정현 외에 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김경하(26)를 비롯해 고소미(24), 김현혜(24)가 훈련 중이었다. 기자는 사실 고등학생 시절이던 10여 년 전 당시 국가대표 선수였던 박해정(35·현재 ‘박해정 탁구클럽’ 운영)과 실제로 경기를 해본 경험이 있다. 3세트를 치르는 동안 기자가 낸 점수는 고작 1점. 그 때는 한 세트가 21점이었으므로 상대가 63점을 내는 동안 단 1점만 따낸 셈이다. 그 1점도 에지(탁구대 끝 모서리) 포인트였다. 그렇다고 기자의 실력이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라는 점을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전문 선수와 일반인의 실력 차를 잘 알고 있는 터라 김정현에게 대폭 페널티를 요구했다. 11점 5세트 경기에서 1세트와 5세트는 정식 라켓으로 경기를 하되 2,3,4세트에는 밥주걱, 미니 탁구라켓, 쟁반, 나무라켓 등 정식 라켓이 아닌 것들을 총동원키로 했다. 물론 1세트와 5세트 역시 11점 중 8점을 접어준다는 조건이었다. ○ ‘폼’나게 탁구 쳐야 탁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윙 폼(form). 오죽하면 ‘탁구에서 졌다는 말은 결국 상대의 폼이 나의 폼보다 그 순간 더 완성되었다는 뜻’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기자 역시 체험 시작과 함께 폼부터 지적당했다. “스윙이 너무 커요. 팔을 어깨 뒤로 빼지 말구요. 마지막 순간 눈앞에서 라켓이 멈춘다는 생각으로요.” “이렇게요?” “아뇨.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처음 몇 차례 올바르게 자세를 잡았다가도 랠리가 이어질라 치면 예전의 어설픈 폼으로 돌아간다. 김정현의 얼굴에 답답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저, 제대로 된 폼을 가지려면 몇 번이나 허공에 라켓을 휘두르며 자세를 교정해야 할까요?” “글쎄요, 오래 전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몸에 익을 정도로 하는 것이 중요하죠.” 몸에 익을 정도라…. 구체적인 숫자가 떠오르지 않는다. 차라리 ‘1000번이면 될 거예요’라고 말해주는 것이 위안이 될 것을. 어렸을 때부터 탁구를 해 온 선수들은 자연스레 자신에 맞는 폼이 몸에 배어있다. 라켓이 없어도 본능적으로 그 폼에 따라 팔의 궤적이 그려진다. 손에 쥔 것이 탁구 라켓이든, 주걱이든, 쟁반이든 상관없다. 눈치 빠른 독자는 지금쯤이면 알아챘을 것이다. 기자가 왜 이리 장황하게 폼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지를. 김정현과의 경기에서 나온 스코어를 굳이 공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5세트를 치르는 동안 따낸 포인트가 한 자릿수라는 것만 밝히겠다. 더불어 서로 일반 라켓보다 두 배 정도 커 보이는 나무 라켓으로 칠 때는 주변에서 “이걸로는 잘 하시네요”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도. 솔직히 말하면 정확한 스코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를 쓰고 공을 넘기면 김정현이 여유 있게 받아넘겼다는 것만 생각난다. 5세트, 매치포인트에 몰렸다. 아무래도 김정현이 설렁설렁 탁구를 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해 한마디 던졌다. “자, 내가 라이벌 선수라고 생각하고, 여기가 국제대회 결승전이라 생각하고 서브 한 번 넣어 봐요.” “정말로요?” “정말이라니까. 자 맘 놓고 넣어 봐요.” 김정현이 손에서 볼을 띄웠다. 순간 기자 쪽 코트를 한 번 튕긴 볼이 순식간에 뒤로 날아가 버렸다. 선수의 서브를 직접 받아본 소감은? 볼에 걸린 회전은 느낄 틈도 없다. 단지 굉장히 빠르다는 것 뿐. 그렇게 이날 경기는 끝이 났다. ○ 기합 소리도 실력 탁구 코트에 ‘탁탁’ 튕기는 볼 소리와 힘차게 울리는 선수들의 기합 소리는 묘한 리듬감을 연출한다. 김정현과 랠리하고 있는 와중에도 옆 테이블에서는 공 튕기는 소리에 맞춰 연신 기합 소리가 터져 나온다. “기합 잘 넣는 선수가 탁구도 잘 쳐요”라는 한 탁구 코치의 말이 떠오른다. 때 마침 이어지는 사진 기자의 주문. “표정이 없어요, 표정이. 파이팅이라도 좀 해봐요.” 마지못해 ‘어이’하고 외쳐보지만 영 어색하다. 맞은편에 있는 김정현이 이렇게 해보라는 듯 소리친다. ‘하압.’ 사실 경기 도중 터져 나오는 기합 소리는 경기력과 무관하지 않다. 올드 팬이라면 연신 ‘파이팅’을 외쳐대며 상대를 압도하던 현정화(현 한국마사회 감독)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최고의 탁구 스타였던 중국 덩야핑이 포인트를 딸 때마다 내뱉던 특이한 음성은 탁구대 앞에 거미처럼 엎드린 그의 독특한 포즈와 함께 상대 선수를 경기 내내 짜증나게 만들었던 요인 중 하나였다. 기자는 오늘 ‘기(氣)’에서도 상대에게 눌린 셈이다. 인천=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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