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기자가만난문화의뜰]파리에서난‘자연인’정재형빨빨거리고치열하게살았다

입력 2008-05-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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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정재형
가수 정재형은 목소리에 ‘감성’을 담는다. “정말 노래 잘 부르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제 감성이 원하는 부분을 표현하는 게 제 목소리예요.” 그는 자신의 음색이 뛰어나지 않다며 먼저 손사래 친다. 그러나 정재형의 팬들은 10년이 넘도록 ‘베이시스’의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를 흥얼거리고, 3집 앨범 ‘For Jacqueline’에 중독 된다. 피아노 건반 위를 유영하며 그가 쓴 가사를 읊조리는 정재형의 얼굴은 자기 안에 침잠한 표정이다. 이번에는 음악이 아닌 책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좀 더 ‘말랑말랑’하다는 정재형의 종이 속 목소리를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새 음반을 발표하고 활발히 라이브 무대를 선보이는 가수 정재형이 프랑스에서 겪은 일상과 상상을 책으로 펴냈다. 혼자 사는 공간에 ‘화분’을 들여놓고 ‘살아있음’에 안도하는 파리 유학생, 한국 잡지사에 보낼 글을 위해 4시간 동안 사진을 찍고도 마음에 드는 게 없어 비통해하는 세심한 마음의 작가…, ‘Pari’s Talk’ 신간에는 자연인 정재형이 숨쉬고 있다. - 노래의 목소리와 책의 문체는 어떻게 다른가? “목소리는 내가 노래를 해야 하는 ‘이유’가 담겨있다. 배우가 역 안으로 들어가서 연기를 하듯이 짧은 시간 동안 노래에 집중한다. 곡마다 노래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1초 안에 눈물을 떨어뜨린다든지 그런 걸로 연기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서커스적인 걸 요구하는 것 같다. 연기를 테크닉으로만 볼 수 없는데, 노래도 마찬가지다. 보여주고 싶은 감성이 있다. 내가 상상하고 원하는 부분에서 내가 직접 부르는 게 표현하기에 낫지 않을까? (웃음) 책의 목소리는 좀 다르다. 내 감성의 좀 더 말랑말랑한 부분을 담았다.” - 독자들이 정재형의 글을 읽고 특별히 얻었으면 하는 게 있나? “남자가 서른에 공부만 하고 버티는 건 너무 힘들다. 독자들이 책을 집었을 때 파리에 대한 것도 있겠지만. 정재형이란 사람을 몰라도 ‘이 사람이 음악 하는 사람이고. 서른 살 때 고민? 아 이런 게 쉽지 않았구나’ 그런 걸 들려주고 싶었다. 학창시절에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도 ‘나’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상처를 자주 받는 아이였는데… 책을 많이 읽었다. 어릴 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도 참 좋아했고, 이솝우화· 안데르센 동화집에도 빠졌다. 책 한 권을 읽을 때, 마음 속 저 안에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멋진가?’ 그런 환상이 있었다. 3집 가사가 글쓰기에 대한 연습이었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었지만 의미 없는 글을 쓰기는 싫었다. ‘연예인이 글 썼네’ 이런 게 아니라 소통하고 싶었다. 젊은이들은 동일한 것들에 대한 열광, ‘이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야지’ 그런 게 있는데, 조금 달라도 멋진 부분이 있다. ‘아…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는 것? ‘혹시 난 쟤랑 같지 않으니까…’라고 고민하던 거에서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 특히 가수 정재형의 팬들을 의식하고 썼나? “나는 총체적으로 ‘팬’이라고 규정짓는 사람을 만들진 않는다. 얼마인지 몰라도 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산다. 정재형 팬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책이 행여 자서전으로 보일까 걱정했고, 좀 더 콩트 형식으로 갈까 고민 했다. 가수 이적 군이 “글 좋네”라고 독려를 많이 해줬다. 필명을 고려한 적도 있다. 나이 쉰이 되기 전에 소설도 쓰고 싶다. 작가들은 저만치 있는데 내가 쓴 글은 내 발자국 안에도 안 보인다. 그들을 흉내 낼 순 없다고 생각하고, 정재형이 고민한 것, 쓸 수 있는 것들을 쓰겠다.” - 책에 ‘정재형화(化)’란 표현이 있다. ‘정재형화’는 무엇인가? “내가 20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데이터와 한 것들이랄까? 가령 ‘이건 한다. 하지 않는다’,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 들이 커다란 원칙이 있다. 편견이 아니라 정재형으로서 굳게 가지고 가는 것들이 있다. 좋은 음악을 하겠다는 자존감? 그런 게 아주 센 편이다.” - 음악 앨범과 책에 등장한 ‘자클린’은? “아주 구체적인 것 같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모호한 존재를 표현했다. 책 속에서는 윗집 여자이지만, 상상 속에 만들어낸 사람일 수도 있다. 그건 나일 수도 있고 여러분일 수도 있다. ‘우리의 자클린’으로 했다가 그냥 ‘자클린’으로 이름을 바꿨다. 모호함이 포인트다.” - 서울에도 파리처럼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공간 혹은 자신만의 비밀 공간이 있나? “레스토랑이라든가 바(bar)를 많이 간다. 프랑스처럼 카페를 이용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자유롭지 않더라. 얼굴이 알려졌다거나 안 알려졌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혼자 있기 불편하다. 동네 ‘다방’을 더 좋아한다. 집 앞에 있는 밥집도 좋아한다. 파리는 ‘이름이 없는 사람’으로서 즐겁고 편했다. 그 곳은 나를 일반화시키고 객관화시킬 수 있는 곳이었다. 더 솔직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 창작의 에너지가 여기도 거기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정재형이 있고, 거기서는 이방인이며 정재형이 아닌 어떤 사람이 있다. 배우들의 연기처럼,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닌 것 같은 ‘다른’ 모습이 생긴다. 그게 빨빨거리고 치열하게 살았던 파리 생활의 즐거움이었다.” - 정재형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배경음악 10곡이 모두 정재형 신곡이다. 직접 도토리를 사서 구입한 것인가? “출판사 편집장이 사줬다. 도토리가 없어서. (웃음) 도토리 50개를 주셨는데, 그걸로 다 샀다. (도토리 5개 당 노래 한 곡을 살 수 있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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