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마저삼켜버린‘히딩크매직’

입력 2008-06-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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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대회 때마다 ‘신화’를 창조하고, 중요한 승부처에서는 ‘매직’을 부리는 거스 히딩크 감독은 누가 뭐래도 진정한 승부사다. 98월드컵 4강, 2002월드컵 4강, 2005UEFA 챔스리그 4강, 2006월드컵 16강…. 특히 히딩크는 국가와 팀을 가리지 않고 변방의 팀들을 정상권으로 끌어올리는 놀라운 수완을 보여왔다. 그런 히딩크가 이번에는 러시아를 이끌고 자신의 조국 네덜란드와 연장 접전 끝에 3-1로 승리, 유로 2008 4강에 올랐다. 러시아는 구 소련 시절인 1988년 이후 20년 만에 준결승에 진출했다. ○조국 마저 기적의 희생양으로 객관적인 전력상으로 네덜란드의 절대 우세였다. 예선 3전 전승, 9득점-1실점의 네덜란드는 2승1패, 4득점-4실점으로 간신히 8강에 턱걸이한 러시아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베일을 벗고보니 네덜란드의 전력은 ‘예선에서 본 그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고, 러시아는 더욱 강해져 있었다. 히딩크는 노련한 언변으로 선수들의 사기를 극대화시켰다. 그는 경기 전 “나는 네덜란드의 반역자가 되고 싶다. 내가 반역자가 된다는 것은 러시아가 승리하는 것”이라며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경기 후에도 마찬가지. 4강전을 염두에 둔 히딩크는 “전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우리가 네덜란드보다 나았다. 거만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모든 면에서 상대를 앞섰다”면서 “이건 기적에 가깝다. 축구인생에서 이보다 더한 것은 경험하지 못했다”는 말로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자신감+체력+전술+정보=히딩크 매직의 원천 ‘히딩크 매직’의 원천은 자신감과 정신력, 전술, 정보를 꼽을 수 있다. 심리전으로 무장된 히딩크는 선수들을 장악, 자신감을 확고히 심어줬고 체계적이고 꾸준한 훈련을 통해 체력을 완성했다. 히딩크는 스타에 의존하는 대신 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조련했고, 신구 멤버들을 고루 활용해 효율적인 리빌딩을 이끌었다. 국내파 위주의 기용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또한, 러시아의 강한 체력도 놀랄 따름이다. 2002년 당시, 한국 선수들에게 “기술은 있지만 체력이 좋지 않다”는 말로 오랜 통념을 깨뜨린 뒤 강인한 체력으로 4강 기적을 만든 것처럼 러시아도 이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탁월한 전술과 정보 수집, 분석 능력도 히딩크 축구의 특징. 그는 모국의 전력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러시아는 예선 내내 맹위를 떨친 반 더 바르트, 스네이더 등 상대 주력들의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해 공격 루트를 봉쇄했다. 상대의 전술에 맞받아칠 작전을 구사할 줄 아는 감독인 것이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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