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가간다]예비역스나이퍼“사격복이기가막혀!”

입력 2008-07-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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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이야말로 군대 허풍의 마르지 않는 젖줄이다. 총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쳤던 남자가 제대 후에는 특등사수가 된다. 8월 9일, 대한민국 남성들은 모두 사격 전문가가 될지 모른다. 여자 10m 공기소총은 올림픽에서 첫 메달이 나오는 종목. 8월 8일 개막하는 베이징올림픽에서는 9일 오전 11시50분(한국시간), 공기소총의 여왕이 탄생한다. 19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여갑순(34·대구은행)이 금메달을, 2000시드니올림픽에서 강초현(26·한화 갤러리아)이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은 이번에도 김찬미(19·기업은행)와 김여울(21·화성시청)이 메달 사냥에 나선다. 혹시라도 어설픈 훈수를 두려는 남자들이 있다면 공기소총 표적지를 보여주면 된다. 자연스레 목소리가 잦아들 것이다. 군대시절 정말(?) 스나이퍼였던 기자도 그랬다. 공기소총 표적지는 사격종목 가운데 가장 작다. 표적지 지름은 4.5cm. 10점은 0.2mm짜리 점이다. 세계기록은 서선화(26)가 2002년에 세운 400점 만점. ‘일반인은 표적지 안에 탄을 넣을 수 있을까.’ 한화 갤러리아 사격단 송희성(46)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전 유성여고의 강초현 사격장으로 향했다. ○ 옷이 날개 1일 코치는 강초현. ‘국민 여동생’ 칭호를 문근영에게 넘겨주고, ‘프린세스 티아라’는 돌고 돌아 김연아에게 갈 정도로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의 영롱함은 변함이 없었다. “일단, 사격복부터 입으세요.” 사격복은 몸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무의탁사격보다 의탁사격의 기록이 더 좋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된다. 변변한 사격복이 없던 시절, 선수들은 빳빳한 청바지를 입고 사대에 서기도 했다. 사격복의 발달로 본선 만점자가 속출하자 국제사격연맹(ISSF)에서는 사격복의 강도를 정했다. 선수들은 경기 전 강도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3.0 이하(낮을수록 강하다)면 실격. 한화 갤러리아 사격단은 강초현, 음보라, 정환희, 강미진(이상 19) 등 여자선수로만 구성돼있다. 송희성 감독의 사격복을 빌렸지만 숨 쉴 때마다 들리는 지퍼 열리는 소리는 감수해야 했다. 사격복을 입으면 몸이 부자연스러워 펭귄걸음이 된다. 지면과의 밀착을 최대한으로 도와주는 사격화도 필수. 왼손에 사격수갑까지 착용하면 준비 완료다. 사격복, 수갑에 사격화까지 합하면 100만원에 이를 정도로 고가다. ○ 돌부처가 되라 공기소총의 무게는 약 4.5kg. 가격은 300만원 수준이다. 육군의 주력소총인 K-2가 3.26kg인 것을 생각하면 꽤 무겁다. 공기소총은 말 그대로 공기압력으로 총탄이 나간다. 실린더로 공기를 주입해 200bar 정도로 기압을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총탄은 납으로 돼 있다. 몸에 힘을 뺀 상태에서 상체를 약간 뒤로 젖힌 것이 기본자세. 강초현은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가기 때문에 선수들은 대부분 허리디스크를 달고 산다”고 했다. 이 자세에서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한다. 총을 지탱할 때는 왼손바닥이 아니라 왼손가락등을 사용하는 것이 더 고정이 잘 된다. 사격은 흔들림과의 싸움. 튼튼한 하체가 없으면 금세 중심이 무너진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필수다. “자세 잡아보세요.” 땀은 뻘뻘. 이만하면 됐다 싶었더니 강초현이 5kg짜리 납주머니를 가져와 총열에 걸었다. 기우뚱. “저희는 이거 걸고 20분씩 있는 걸요.” 이번에는 평균대에 위에 올라가란다. “1분만 버티면 맛 있는 것 사드릴게요.” 영화 ‘쿵푸팬더’의 시푸처럼 먹을 것을 이용해 제자의 열정을 끌어내려는 지혜로움. 하지만 진수성찬은 3초만에 멀어져 갔다. ○ 천재 아니라면 바보가 되어야 조준은 군대에서 배운 대로. 표적과 가늠쇠, 가늠자를 일치시켜 조준선 정렬을 시킨다. 숨을 내쉬다가 정지한 상태에서 2번에 나누어 격발. 강초현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타이밍이 있다”고 했다. 표적과 나를 일치시켜 방아쇠를 당기는 시점은 각자 다르다. 그 감각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선수가 ‘천재’다. 강초현은 “천재가 아니라면 아예 바보여야 한다”고 했다. ‘내 머릿속 지우개’를 가지고 전발(前發)에 미련들을 잊는 것이다. “생각 없이 쐈는데 잘 들어갔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다. 어느 경우든 평범한 사람은 못 쏜다. 첫 번째 격발. 표적지에서 4점부터는 지름 3cm의 흑점. 가늠쇠링 안에 흑점을 어설프게 넣었다. 10점은 보이지도 않는다. 5초가 흐르자 벌써 부르르. 흑점이 가늠쇠링 안에서 요동친다. 예비 격발을 하는 순간. “빵!” 총알이 나갔다. “방아쇠는 굉장히 예민해요. 아주 살짝만 힘을 줘도 격발됩니다.” 두 번에 나누어 당기는 감각을 익혀야 한다. 강초현은 “사격선수는 두 개의 독립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나는 시각. 다른 하나는 손끝의 촉각. 어떤 선수들은 격발감각을 날카롭게 하기 위해 오른손 검지의 피부를 뜯어내기도 한다. ○ 전발을 평가하되 미련은 버려라 격발 이후에는 예상지점을 추적하고 예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드백 과정을 통해 무엇을 잘못했는지 평가해야 다음 발을 더 잘 쏠 수 있다. 20발의 연습사격 중 10점도 한 차례 나왔다. “10.2점은 될 것 같네요.” 공기소총은 40발(400점)의 본선 후 상위 8명이 10발(109점 만점)의 결선을 펼친다. 결선에서는 기계로 탄착점을 측정, 소수점(10.9점 만점)까지 점수를 매긴다. 마지막 10발(100점 만점)의 결과는 67점. 문득 떠오른 의문. 만약 사격복을 입지 않고 10발을 쏜다면? 자유로운 몸이 되자 총알도 자유롭게 나갔다. 3발이 표적을 벗어난 끝에 27점에 그쳤다. 송희성 감독은 “선수들도 사격복을 벗으면 기록 편차가 심하다”고 했다. 군대에서 총을 못 쐈던 남자들. 이제 솔직히 PRI의 서러운 기억을 털어놓아도 된다. “내가 그 때 사격복만 있었으면 말이지…. 로보캅이 백발백중인 건 철갑옷 덕분이거든.” 하지만 모두가 사격복을 입은 상황에서는 허풍이 통하지 않는다. 강초현은 “0.2점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지만 그때의 부족함을 메우려는 열정 덕에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전발을 평가하되 미련은 두지 않는 것, 실패를 담담하게 돌이켜보되 좌절하지 않는 것. 사격체험이 가슴에 쏘는 메시지였다. 대전=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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