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파배우,이범수“10%개런티에만족…약속을지켰다”

입력 2008-08-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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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이범수란 이름을 쳐보자. 간략한 시상소개와 함께 프로필에 출연작이 나온다. 이 곳을 클릭해 들어가면 그의 엄청난 필모그래피에 입이 딱 벌어진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영화 주연으로 활약하는 하는 배우들 중에 이범수만큼 무명시절 단역을 많이 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연극영화과 시절, 연기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누구나 동경하는 햄릿 역으로 극찬을 받는 등 엘리트코스를 밝았다. 이런 그가 졸업 후 오디션을 볼 때마다 “당신이 화려한 외모를 갖고 있냐? 그렇다고 키가 크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연기 하나는 자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오디션 끝에 개성강한 조연으로 시작해 사극부터 스포츠, 액션까지 섭렵한 주인공이 됐다. 지난 해 홀연히 드라마로 진출, 보란 듯이 ‘외과의사 봉달희’와 ‘온에어’를 연속해서 성공시켰다.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영화. 하지만 이범수의 새 영화 ‘고사 : 피의 중간고사’(이하 ‘고사’)는 한국 영화 평균제작비의 절반 규모도 안 되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평소 받는 개런티의 10%대를 제의했다. 그의 소속사가 제작에 참여했다고 하지만 그 정도의 지명도를 가진 배우라면 당연히 거절했을 영화다. 하지만 이범수는 이런 상황에서 아주 심플하게 마음을 결정했다. “축구선수가 비 내린다고 경기 안나가나요? 비가 오나 눈이오나 나가서 골도 넣고 뛰어야죠. 소속사가 하는데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고. 뮤직비디오 함께 했던 창 감독이 연출 데뷔할 때 꼭 출연하기로 했던 약속도 지켜야했습니다. 당연히 해야죠.” 누구보다 험난한 길을 걸어 정상에 섰지만 미련 없이 자신을 낮추고 작은 영화에 함께 한 이범수. 그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 강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 때문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시작이자 이범수의 가장 큰 재산인 10년간의 출연작을 통해 그를 만났다. ● ‘동거동락’(2000년 MBC 예능 프로그램. 남다른 입심으로 인기투표 2위 기록) ‘온에어’ 촬영이 끝나면 잠시 쉬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고사’ 출연제의를 받고 큰 고민 없이 결정했습니다. 낮은 개런티요? 괜찮습니다. 제작자와 감독 모두 전부터 친분이 깊어요. 동고동락해야죠. 저는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희생이요? 그건 너무 거창하고. 고생 조금만 더 하면 되는 일이에요. 옛날에는 더 힘들었는데요 뭘. ● ‘이대로 죽을 순 없다’(2005년. 순직해 보험금을 타려는 엉뚱한 형사) 전 넓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한 작품 때문에 인정받고 한 작품 때문에 무너지는 연기자는 좋은 배우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전부터 공포·호러 영화에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또 한 번 넓어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획이 좀 늦어져서 40일 만에 촬영을 끝내야 했어요. 주요 출연자 중 영화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저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대로 죽을 순 없었죠. 창 감독은 뚝딱 이틀 만에 30분 분량 뮤직비디오 찍는 실력 있는 연출자였어요. 그 역량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게 열심히 도왔습니다. ● ‘잘살아보세’(2006년. 새마을운동시절 마을 사람 배불리 먹이는 게 소원인 이장) 시사회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데 극장주 분들이 제가 뒤에 있는 줄 모르고 “이범수가 출연 한 이유가 있었네”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칭찬보다 고마웠습니다. ‘고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에 조금씩 변하는 모습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극도로 무서운 상황에서 자신과 함께 학생들도 챙겨야하는 선생님의 모습까지. 배우로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습니다. 제 소원은 ‘메이드인 이범수’란 말을 듣는 겁니다. 이범수가 하면 작품이 신뢰를 받는 그런 프라이드를 갖고 싶습니다. ‘고사’도 그렇게 되는 과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신장개업’(1999년. 장사가 안돼 사람고기라도 써야겠다는 중국집의 배달원) 드라마 성공은 큰 행운입니다. 작품 운이 좋았습니다. 영화와 드라마는 환경과 특성이 달라 적응하는데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결과가 좋아 뿌듯합니다. 드라마도 잘 했으니 해외진출도 해보라고요? 하하하. 물론 저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에게 기회가 생기면 절대 거절 안하죠! 하하. 그 기회가 생기느냐 아니냐는 제게 달려있겠죠. 하지만 할리우드의 자본력과 아이디어, 기술은 인정해도 배우가 우리보다 연기 잘한다는 것은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능력과 표현력은 우리배우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한번 부딪혀 보고 싶기도 해요. ● ‘고사’(2008년. 학교에 갇혀 목숨을 걸고 시험을 풀어야하는 학생들을 지키는 선생님) ‘고사’는 호러 영화로 충분히 매력이 있습니다. 친구를 구하기 위해 시험을 풀어야하는 급박감과 초조함이 잘 살아있습니다. 우리 영화는 작은 규모로 제작됐고 기획이 늦어져 촬영도 빨리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 배우와 제작진이 모두 똘똘 뭉쳤습니다. 다른 영화와 비교해 반도 안 되는 제작비를 쓰고 적은 수의 스크린에서 개봉되겠지만, 고생했던 동료들이 많은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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