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엄마의다른생각]선수들에게부끄럽지않은가

입력 2008-08-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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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나아지는 것이 있고 유지되는 것이 있고 나빠지는 것이 있다.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확실히 우리나라 선수들의 기량은 과거에 비해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 혹은 악화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언론이다. 대중매체의 올림픽 캠페인은 승리만을 추구 한다. 승리하지 못한 경우의 설정화면은 비장한 음악에 눈물과 위로와 도전 등의 문구로 점철되어 있다. 메달을 따지 못하면 위로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얘기하고, 4년 동안 와신상담하여 4년 후에는 반드시 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를 보여주라고 부추긴다. 일견 경쾌해 보이는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올림픽 생각대로 하면 되고” 캠페인은 올림픽을 가볍게 생각하자는 제스추어를 취하는 듯 해보이지만 가사내용은 매우 억압적이다. 운동이라는 것이 그렇게 뚝딱 생각대로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생각대로 되는 것이 곧 메달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그 ‘생각’이 선수들의 생각이 아니라 ‘승리만을 바라는 거대한 집단’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사실 올림픽 캠페인 중에서 가장 무서운 카피는 “가슴에 태극기가 있다면 반드시 이겨라”라는 문구이다. 이기지 못하면 태극기를 달 자격이 없다는 것인가? 이기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는 얘기인가? 올림픽 혹은 스포츠를 통해 국가적 자존심을 내세우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대착오의 백미는 중계방송이다. 반말, 막말이 난무하고 전문적이지 않은 중계방송에 대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성토를 하고 있지만 방송은 꿋꿋하기 그지없다. 물론 방송국에서는 모든 것의 기준이 시청률일 것이니 착각이건 뭐건 비판적인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일방적으로 청각 테러를 당해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음 소거를 하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란 없다. 올림픽 중계를 보다 보면 우리 아이조차 코웃음을 칠 때가 있다. 화가 나는 수준을 넘어서 창피하다.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아이들에게, 그리고 선수들에게 미안해진다. 선수들은 그렇게 힘들게 훈련을 하는데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은 왜 평소에 훈련을 하지 않는가.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려고 죽을힘을 다하는데 왜 방송인들은 노력하지 않고 쉽게 방송을 하려고 하는가. 왜 밤새고 발로 뛰며 전문성을 키우고 공부하는 대신 오락 프로그램에서 말장난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선수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하지도 않은가. 올림픽이 다 끝나면 겨우 주말 오전 프로그램에서 올림픽 중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반성하는 척 하겠지. 아, 정말 지겹다. 제대로 된 아나운서, 제대로 된 해설자의 제대로 된 중계방송을 듣고 싶다는 바람이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바람 보다 훨씬 간절한 국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방송관계자들은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윤 재 인 비주류 문화판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프리랜서 전시기획자 학교를 다니지 않는 17살 된 아이와 둘이 살고 있다 생긴 대로 살아가도 굶어죽지 않을 방법을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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