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프리토킹]다혈질과거,포용의리더십낳다

입력 2008-10-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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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매뉴얼 감독의‘성공비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강호 뉴욕 메츠를 밀어내고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2년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찰리 매뉴얼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6시즌을 외야수로 뛰었다. 하지만 그가 출장한 경기수는 고작 242경기, 통산타율도 2할에 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성질도 급해 툭하면 화를 내고 심판판정에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잦았다. 일본에 진출하기 직전인 74년과 75년에는 LA 다저스 소속으로 불과 19경기에 출장한 것이 고작이었다. 심지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뒤 한 시즌 48개의 홈런을 치며 스타로 군림했지만 그의 성질은 여전해서 심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2000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감독을 맡아 첫해 지구 2위, 그 이듬해 지구 1위를 차지했지만 2002년 지구 3위를 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중반 5할 승률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경질되고 말았다. 2005년 다시 필리스 감독으로 복귀한 매뉴얼은 첫 2년간 지구 2위를 차지한 뒤 계속 지구 수위로 팀을 이끌고 있다. 90년대 중후반 인디언스 전성기를 지켜본 클리블랜드 팬들의 기대감은 엄청나게 높아 매뉴얼 감독이 지휘한 클리블랜드 성적은 그리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 또한 매너 나쁘기로 유명한 필리스 팬들 역시 새롭게 투자하는 팀에 기대가 큰 상황이라 감독으로서의 부담감은 상당히 클 것이다. 어쨌든 그는 소리 소문 없이 팀을 성공의 길로 이끌고 있다. 지난 토요일(11일) 다저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을 앞두고 그는 심장마비로 87세의 노모(老母)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했다. 64세의 매뉴얼 감독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지만 침착하게 선수들을 독려하며 난타전 끝에 시리즈를 2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13일엔 다저스 원정경기 패배. 2차전 선발은 브렛 마이어스로 지난해부터 매뉴얼 감독의 속을 썩이는 선수 중 한명이었다. 마운드에선 5이닝 5실점했지만 타선의 지원으로 승리투수가 됐고, 오히려 타석에서 3타수 3안타 3타점으로 엉뚱한(?) 기여를 하기도 했다. 당연히 에이스 역할을 해야 할 투수가 지난해 이유 없는 부진에 빠지자 매뉴얼 감독은 마무리 투수로 임시전업하게 해 다시 선발로 돌아오도록 자신감을 채워주기도 했다. 마이어스는 올해 역시 부진으로 마이너리그까지 강등당하기도 했다. 빅리그 복귀 후 구위와 자신감을 찾았지만 마이어스 역시 다혈질 선수로 자신을 강판시킨다고 감독에게 대들기도 했다. 2006년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되기도 했던 마이어스는 올 시즌 후반 2번이나 덕아웃에서 대놓고 감독과 얼굴을 맞대고 언쟁을 펼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페넌트레이스 경쟁이 한창일 때 이런 상황은 적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매뉴얼 감독은 늘 서로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이미 과거지사라며 거꾸로 마이어스를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마이어스의 모습에서 매뉴얼 감독 자신의 과거가 투영되는지도 모른다. 매뉴얼 역시 성질이 그리 부드러운 축에 속하지 않지만 자칫 문제가 될 수 있는 선수들의 불협화음을 잠재우며 묵묵히 팀을 이끌고 있다. 또한 페넌트레이스 때 LA 원정경기에서 팀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지난해 MVP 지미 롤린스가 TV에 출연해 필리스 팬들에 대해 좋지 않은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지역 언론 및 팬들이 그를 맹비난할 때 매뉴얼 감독은 선수와 팬의 입장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조율하며 큰 무리 없이 고비를 넘어가도록 만들기도 했다. 매뉴얼의 메이저리그 선수생활 마지막 2년간을 감독했던 LA 다저스의 명장 월터 앨스턴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시즌 중 누구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신인선수들을 데리고 나가 저녁을 사주고 야구얘기가 아닌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마치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감독은 선수시절의 명성만으로, 단순히 뛰어난 지략과 작전만으로 팀을 우승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필리스에서 1루코치를 맡고 있는 감독 출신의 데이비 롭스는 매뉴얼 감독을 두고 “그는 경기를 잘 관리한다. 하지만 사람 관리를 한층 더 잘한다”고 칭찬한다. 매뉴얼 감독 스스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그를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 그의 많은 경험이 지금의 감독생활에 모두 투영되고 있고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올 시즌 필리스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지만 아마 우리는 또 하나의 명장 탄생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송재우 | 메이저리그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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