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기자의가을이야기]심광호끝나지않은가을

입력 2008-10-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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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난가을사나이”주문…대타설움한방에날릴겁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는 ‘보험용 포수’입니다. 진갑용과 현재윤이 모두 뛸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삼성이 ‘쟁여둔’ 세 번째 포수. 12년 몸담았던 고향팀 한화를 떠나 지난 4월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던 순간, 심광호(31·사진)의 운명은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그가 포함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도 알아요. 지금 제 자리는 포수가 아니라 대타라는 걸.” 사람 좋은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집니다. 이내 눈가도 젖어듭니다. 힘겨웠던 새 출발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트레이드와 동시에 4년간 교제한 여자친구마저 그를 떠났습니다. 함께 꿈꾸던 장밋빛 미래는 커녕 암울한 현실만이 그를 휘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불도 못 켠 채 우두커니 앉아있곤 했습니다. 새 동료들이 다가와도 마음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야구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하기 싫었던 겁니다. 지난 5월 말, 오랜만에 선발승을 거둔 윤성환에게서 “형이 마음 편하게 이끌어준 덕분이에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아마 더 오래 힘들었을 거랍니다. 하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입니다. 누군가 진심을 알아주기 시작하면 힘이 솟습니다. 한화 시절, 어떻게 투수들의 신임을 얻었는지를 돌이켰습니다. 축 늘어져있던 몸을 다시 일으켜 간신히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실 그에게도 ‘가을의 추억’이 있습니다. 2년 전 한국시리즈 3차전, 한화가 1-3으로 뒤진 8회. 깜짝 대타로 나선 그가 삼성 마무리 오승환을 상대로 동점 2점포를 터뜨렸습니다. 당시의 오승환은 ‘난공불락’으로 통했는데도 말입니다. 심광호는 “데뷔 후 그런 스포트라이트는 처음 받아봤어요”라고 회상합니다. 물론 그런 기회가 또 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준PO 2차전에 단 한번 대타로 나섰지만 내야플라이로 물러난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그저 밤마다 ‘나는 가을사나이다, 나는 가을사나이다’라는 주문을 외우며 스스로를 다잡을 뿐입니다. 서른한 살 포수 심광호.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엔 나이가 많고, 베테랑이라고 하기엔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저 훗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릴 뿐입니다. 시즌이 끝나면 그는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도전에 나섭니다. 언젠가 또다시 ‘큰 경기에서 한 방 치는 날’을 기다리면서요. 심광호의 가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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