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한국의골프대디(하)]생업·사생활뒤로한채24시간그림자외조

입력 2009-0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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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를 필두로 한 한국 여자프로골퍼들의 성공 뒤에는 24시간 선수들의 곁에서 매니저이자 코치, 운전기사, 캐디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골프대디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숨어있다. 한 때 왜곡되고 과장된 소문들 때문에 골프대디에 대한 비판론이 일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들의 노력이 한국 여자프로골프 무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한국 낭자군단이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골프대디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집안이 천천히 망하려면 딸에게 골프를 시켜라? 딸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지존에서 세계 골프계를 호령하는 재목으로 키워낸 신지애(21ㆍ하이마트)의 아버지 신재섭 씨는 딸이 프로로 데뷔하기 4년 전만 해도,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5만원 짜리 방에서 살았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딸을 대회에 참가시켰다. 프로데뷔 전 5년 동안 아파트 20층 계단을 7번씩 오르내리도록하고, 운동장을 20바퀴씩 뛰게 하는 등 누우면 그대로 곯아떨어질 정도의 혹독한 체력 훈련을 시켰지만 그 때문인지 딸의 키가 더 자라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도 한다. 안타까운 부정이 만든 신지애의 신화다. 2008년 US오픈 우승을 차지한 박인비의 아버지 박건규 씨는 딸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12살의 어린 딸을 미국으로 보냈다. 기러기 아빠를 자청한 뒤 뒷바라지를 위해 사생활은 완전히 포기해야 했다. ‘골프 여왕’ 박세리는 아버지 박준철 씨가 오늘의 박세리를 길러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전설처럼 골프계에 널리 알려졌고 다른 골프대디의 모범이 됐다. 골프선수인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배추농사와 포크레인 운전사를 병행하는 골프대디도 있다. 함평 골프고등학교 2학년 김초희 양의 아버지 김인규 씨는 “하루 일당이 40만원이지만, 딸이 라운드를 한 번하면 40만원이 날아간다”고 말한다. 레슨비와 대회 참가비, 용품 구입비 등 라운드 비용을 포함하면 보통 주니어 골퍼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한 달에 500만원이 넘는다. 7년간 딸을 가르친 비용이 4억원 가량이다. “집안이 빨리 망하려면 정치, 살살 망하려면 딸에게 골프를 시켜라”는 골프대디들 사이의 우스개 소리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골프대디들은 이처럼 엄청난 재정적인 압박과, 성적이 잘 나지 않는 딸의 장래만을 믿고 기다려주었고, 딸이 운동을 마치고 잠을 자는 시간에도 노심초사하며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승을 차지하는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는 들러리가 될 뿐인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유망주’라는 말, ‘꿈나무’라는 한 마디 말을 믿고 걸어온 힘든 길이었을 것이다. ○믿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프로 데뷔 3년 만에 KLPGA 하반기 대회 SBS 채리티 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이후 KB국민은행 스타투어 3차 대회와 빈하이 오픈까지 내리 3연승을 거두고, 인터불고 마스터즈와 세인트포 레이디즈 마스터스, ADT캡스 챔피언십까지 지난해 무려 6승을 거두며 KLPGA무대의 샛별로 떠오른 서희경(23·하이마트)의 아버지 서용환 씨 역시 딸의 장래를 위해 10여년을 투자하며 자신의 인생을 딸의 미래와 바꿨다. “거의 매일 필드를 나갈 정도로 골프를 좋아했지만 딸에게 치중하다보니 운동할만한 시간이 없어 포기했어요.” 포기해야 했던 것은 그 뿐만이 아니다. 유통업에 종사하던 서용환 씨는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골프를 시키는 모든 부모들이 같이 겪는 어려움이겠지만 생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해요. 그러다보면 자금압박으로 겪는 어려움이 가장 크죠.” 골프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잘 되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더 아득한 길이다. “처음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시집가서 자기 생활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골프 선수보다는 골프 관련 업계에서 일하게 해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계획이 바뀌게 된 거죠.” 시즌 6승을 거둔 챔피언의 아버지는 주니어 시절보다 프로 데뷔 후 2년 가까이 우승이 없어 힘들어하는 딸의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지금 이렇게 잘 해주는 모습을 보면 마음 뿌듯하고 대견스럽지만 고통의 시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능성은 주니어 때 여고부 랭킹 1위를 하면서부터 엿보였지만 프로무대 우승은 요원한 일이었다. 남들보다는 감각이 좋아 기술을 빨리 받아들이는 편이었지만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더 마음아파 했겠지만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는 딸의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속상했어요. 하지만 그 때마다 준비는 다 되어있으니 자신을 믿고 기다리고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고 말해주었죠.” 서용환 씨는 딸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노하우라면 노하우겠지만 강요에 의해서보다는 자발적으로 하기를 원했어요. 다행스럽게도 본인이 열심히 노력해줬죠.” 골프는 시간과 돈이 모두 투자되는 운동이다. 보통 주니어로 시작해서 프로가 되기까지 10년 이상 시간과 금전을 투자해야 한다. 프로가 된다 해도 우승을 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때문에 서두르기 보다는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최선을 다하는 길 뿐이다. “빠른 시간 안에 성적을 내기 위해서 강요하고 재촉하는 부모들도 있지만, 그런 부분은 자제했으면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선수 본인이 찾아서 하는 순간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의 골프대디들은 딸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걸어왔고, 그 결실이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여자선수들의 승전보다. 한국 골프대디의 헌신적인 노력은 외국 선수들에게까지 전파됐다. 폴라 크리머(미국)는 조종사 출신의 아버지가 정년퇴직 후 딸의 뒷바라지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모건 프레셀(미국) 역시 할아버지가 골프대디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여자 선수들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아버지들의 애틋한 부정(父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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